깜짝쇼 벌이려다, 내가 속았다

2006.04.09 19:24:00


아이들의 저녁 시간이 지나자 교정에 활짝 핀 벚꽃 사이로 오색 전등불이 켜졌다. 올해는 이상기온 탓에 4월 초까지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려 벚꽃의 개화 시기가 예년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 꽃망울은 탐스러웠다.

매년 담임을 하면서 벚꽃을 배경으로 반별로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지도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열 한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에 지쳐있는 아이들이기에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득 아이들을 위해 깜짝쇼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아이들에게 트집을 잡을 만한 건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 수없이 요즘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청소문제를 들어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기로 하였다.

그 날 저녁. 야간자율학습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우선 실장에게 엄한 경고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저녁 식사 후, 모두 현관 앞에 집합. 담임"

잠시 뒤, 실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갑작스런 나의 경고성의 문자메시지 내용에 실장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나의 깜짝쇼를 눈치라도 챌까 더 엄한 경고성의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7시까지 집합완료. 시간 못 지키면큰 벌을 받게됨. 담임"

7시가 되어가자 어둠 속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현관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좀더 리얼하게 보이기 위해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내 손에 쥐어진 회초리를 본 탓인지 긴장된 표정을 하며 줄을 맞춰 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몇 명의 아이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다.

현관 앞에 집합한 모든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였다. 그러나 완벽한 깜짝쇼를 위해 침착하게 행동하였다.

"자, 열외 없이 다 모였지? 요즘 교실 청소상태가 잘 안되고 있는 거 알지? 공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것을 잘 해야지. 그래서 지금부터 간단한 벌을 주겠다."
"선생님, 어떤 벌을 주실건가요?"

벌을 받는다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한 녀석이 먼저 선수를 치며 물었다.

"궁금하니? 그럼 우선 너부터 여기에 서서 기준을 잡아. 알았지? 그리고 나머지는 OO를 중심으로 줄을 서는 거야. 자, 실시."

아이들은 내 주문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다음 주문을 요구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내 주문을 열심히 따랐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세를 취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벌이다."
"예~에? 무슨 벌이 이래요?"

"왜? 이 벌이 마음에 들지 않니? 그럼 진짜 벌 한번 받아볼래?"
"선생님 그러시는 것이 어디 있어요? 저희들은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내 말이 맞지?"
"너 어떻게 알았니?"

사실 그랬다. 아이들은 나의 깜짝쇼를 미리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내가 눈치를 챌까 조심스럽게 내 주문을 따라와 주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모든 아이들은 눈치를 챘는지 얼굴 위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반짝이는 오색전등 불빛에 비춰진 아이들의 얼굴이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자, 얘들아 준비 됐니? 치∼즈. 하나 둘 셋…"
"치~즈……"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승리의 'V'자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액정 모니터 위로 나타난 아이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어설픈 감독의 의해 이루어진 잠깐의 깜짝쇼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는 날이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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