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들에게 배우는 새로운 세상

2006.04.26 11:54:00


교직경력에 비해 저학년을 맡은 기간이 짧습니다. 그래서 3월에 이곳 문의초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긴 제가 3학년인 우리 반 꼬마들을 만나던 날은 설렘과 기대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첫 만남이 있은 후 지금까지 무던히도 노력을 했는데 아직까지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만해도 이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데 40여일이라는 기간이 이렇게 부족하리라고는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교사이기 이전에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잘못입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어른인 제가 아무리 열린 사고를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 해도 생활 자체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앞서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합니다.

국어 말하기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숙제로 낸 후 발표를 시켰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 난 곳이 병원이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교육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고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전교가 대청소를 하던 날 아이들이 청소는 안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말썽만 부렸지요. 그래도 몇 명은 남을 것이라 생각하며 선생님 심부름 해줄 사람만 남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모두 달아나고 교실에는 달랑 저 혼자 남아 있었지요.

왜 그것만 있겠습니까? 너무 철부지 행동을 한다는 생각에서 아이들에게 사람은 눈치코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줬지요. 그날 눈치와 코치를 설명해주느라 진땀을 뺐답니다. 눈치는 그렇다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에게 코치까지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럭비공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 많다보니 긴장도 되지만 요즘은 스릴도 느낍니다.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집에 간줄 알았던 정민이가 흐느끼면서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내용을 알아보니 외래 강사에게 처음 특기・적성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고, 내용을 모른 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공중전화가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얼른 제 핸드폰을 꺼내주며 엄마와 통화를 하게 했더니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교실에서 일하고 있는 제게 또 정민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에는 시내버스 차비 300원이 없어 우는 것이랍니다. 옆에 따라온 수진이도 차비가 없다고 울상입니다.

그런 것은 빨리 선생님에게 얘기하면 된다며 두 아이이게 차비를 줘 집으로 보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책상 위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하고는 하루 종일 즐거워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들과 이렇게 다릅니다. 돈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어른들에게 300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고 감사해 할줄 압니다.

우리 반 서경이는 무척 명랑하고 붙임성도 많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요즘 저에게 부탁하는 게 있습니다. 자기네 식당인 삼천냥 보리밥에 와서 음식을 먹어보라는 것입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는 은근슬쩍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이제는 쪽지를 써서 컴퓨터의 모니터에 붙여놓으면서까지 강요를 합니다.

‘선생님에게 공짜로 보리밥 한 그릇 주는 게 소원이냐’는 제 농담에 서경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공짜 아녜요. 돈 내야 해요.”
“그럼, 왜 그렇게 오라고 하는데?”
“잡숴보고 맛있다고 소문내달라고요.”
“・・・・・・.”

서경이는 제가 가끔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네 집을 좋게 선전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 아이가 치밀하게 이속을 따지는 어른들의 상술을 배웠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냥 자기네 식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바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요.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쩌면 올 일년 동안 저를 즐겁게 해줄 일들이 아이들 개개인의 가슴속 또는 교실 구석구석에서 끄집어내 줄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린 꼬마들에게 배우는 새로운 세상에서 저 또한 새로운 행복을 꿈꿉니다. 어른들의 눈이 아닌 아이들의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숨쉴 수 있는 그런 큰 사랑도 만들 겁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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