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만나는 심훈의 상록수

2006.04.12 08:57:00


대지가 푸르름을 더하고 여기저기서 만발한 꽃소식이 전해져오는 따뜻한 봄날이다. 이렇게 좋은 날 바닷가라도 훌쩍 다녀오면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거리도 생긴다. 요즘 서해 바닷가의 포구에는 쭈꾸미, 간재미, 실치회를 맛보려는 외지 차량들로 붐빈다.

여행에서 먹거리 만큼 중요한 게 볼거리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라도 배워오는 여행이면 더 좋다. 서해 바닷가를 오가며 잠깐만 짬을 내면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기에 필경사에서 심훈의 상록수를 만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1935년 동아일보사는 창간 15주년기념으로 그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원의 현상금을 걸고 농촌계몽에 관한 소설을 공모했다. 그때 당선되어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이 심훈(沈熏)의 상록수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농촌계몽운동과 민족주의를 다룬 상록수의 줄거리가 더 애달프기도 하다.

주인공인 채영신과 박동혁은 방학동안 신문사에서 주최했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한 학생이다. 둘은 신문사에서 베푼 위로회 겸 보고회 석상에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영신은 여자 신학교 학생이고 동혁은 수원 고등 농림 학생이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동혁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향인 한곡리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나선다.

동혁은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 회관을 건립하고 마을 개량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달갑지 않게 여긴 지주의 아들 강기천은 당국에서 농촌진흥회 사업을 권장하자 농우회관을 농촌진흥회 회관으로 돌리려고 방해를 해 어려움을 겪는다.

기독교 청년회 농촌사업부의 특파원 자격으로 청석골에 내려간 영신도 부녀회를 조직하고 예배당에서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하며 기부금을 모아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강습소로 쓰고 있는 집이 좁고 낡았다는 핑계로 13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80명만 받고 기부금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주재소장의 주의를 받는다.

주재소에서 돌아와 절망하던 영신은 학생들을 밖으로 내쫓지만 영신의 진심을 아는 아이들은 예배당을 기웃거린다. 감격한 영신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아이들을 맞이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건물을 지으려다가 기부금 강요 혐의로 주재소에 끌려간다.

출소한 영신은 힘든 것도 마다않고 손수 일하다가 학원 낙성식 날 과로와 맹장염으로 쓰러져 입원한다. 문병 온 동혁이 청석골에 있는 동안 회원들을 매수한 강기천이 농우회를 진흥회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이 되자 동혁의 동생은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영신은 동생대신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혁을 면회 가고 둘은 농촌 운동에 전념하기로 약속한다. 기독교계의 추천에 의해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신은 감옥에 있는 동혁이 오기도 전에 병이 악화돼 숨진다. 영신을 장례지내고 산을 내려오던 동혁은 상록수들을 바라보며 농촌을 위해 몸 바칠 것을 다짐한다.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에 가면 늘 푸른 나무들이 맞이한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에 있는 필경사는 흔히 볼 수 있는 초가지붕과 손수 심었다는 커다란 향나무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필경사는 심훈이 35세인 193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문학에 몰두했던 문학의 산실이다. 주변이 모두 낮은 밭 구릉인 필경사의 옥호는 ‘붓으로 밭을 간다.’는 필경(筆耕)이라는 옛말에서 따왔다. 심훈은 ‘필경사 잡기’란 글에서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가 일제의 검열에 걸려 못 냈는데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필경'이란 시의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심훈이 집 지을 터를 잡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잃어버린 상아 담뱃대를 찾은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찬찬히 둘러보니 길들일 만한 터라는 생각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 필경사라고 전해온다.

필경사는 개방하지 않는 곳이라 겉모습만 봐야 한다. 그렇더라도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면 그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방안 풍경이 보여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상록수 문학 기념관도 연락처를 알리는 전화번호(011-9443-0455)만 걸려있는 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마당에 있는 시비 앞에서 '그날이 오면'을 읊조리며 어떻게 단 한편의 시로 세계적인 시인이 될 수 있었는지 심훈의 문학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는 재미도 있다. 어쩌면 따뜻한 봄날 만나는 심훈의 상록수가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우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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