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월 5일 나는 두 가지 때문에 흐뭇해했다.
전날 체육대회를 하는 바람에 어린이날에야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아내와 청주 용암동에 있는 농협물류센터를 찾았다. 학부모님들이 사온 물건을 나눠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달라고 아우성쳐 담임의 입장이 난처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같은 것이더라도 색깔까지 같아야 하는데 문구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연필세트를 고르고 보니 두 반의 명수에서 몇 개가 모자랐다.
그때 옆에 있던 종업원이 두 반 어린이들의 명수에 맞게 색깔을 맞춰줬다. 또 50개가 넘는 물건을 포장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계산대에 가서 임시 계산을 하면 우리가 쇼핑을 하는 사이에 자기가 포장을 해놓겠다는 얘기도 했다.
쇼핑을 끝내고 안내대로 물건을 찾으러 갔더니 선물을 넣을 수 있는 쇼핑백이 없는 것을 걱정하며 손수 빈 박스가 있는 곳으로 물건을 들고 가 테이프로 손잡이까지 만들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 덕에 우리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기다리지 않고 찾으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큰 매장이 좁게 느껴질 만큼 서비스를 베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름도 모르지만 마음씨가 아름다운 종업원을 만나니 소비자인 나도 마냥 즐거웠다.
저녁에 식구들과 집근처의 식당에서 외식을 했다. 요즘 부모들 자식사랑이 남다르기도 하고 1년에 한번밖에 없는 어린이날이니 식당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형 식당인데도 1시간여를 기다린 후에야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어린이날이라고 하루 종일 대우받으니 아이들은 식당에서도 신이 났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바라보다 테이블마다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린이날이라고 자기 자식만 위하는 못된 부모보다는 부모님까지 모실 줄 아는 착한 자식들이 많았다. ‘요즘 부모들 자기 자식만 위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어쩌면 기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부모님의 은혜에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는 제34회 어버이날이다.
남을 대할 때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존경하는 게 공경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듯이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가짐도 같아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생활규범인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나오고,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예의와 범절을 중시했던 우리나라는 몇 년 전만해도 어른 공경이 생활화 되어 있었다.
가정해체가 심하다보니 해가 갈수록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노인들이 늘어나 걱정이란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잘못된 일보다 남에게 귀감이 되는 일들이 더 많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번 어버이날에 표창을 받는 사람들의 사연 또한 그렇다.
국민훈장목련장을 받는다는 소식에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를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는 ‘용달차 아저씨’ 김치수씨의 사연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앞 못 보는 105세 할아버지, 노환으로 고생하는 팔순의 부모, 암 투병 중인 아내에 대한 간병은 물론 동네의 다른 노인들까지 돌봐왔다니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하다.
흔히들 앞에 닥치면 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든 한꺼번에 환자 4명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해봐라. 대부분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분들에게는 선인(善人)’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알고 있지 못하거나 매스컴에 소개되지 않았을 뿐 우리 주위에는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하면서 세상살이를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아직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맛나는 세상살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이왕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육자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선봉에 서야한다. 우리가 선봉에서 모범을 보이면 분명 지금보다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