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은 교사에게 너무 무거운 짐

2006.05.25 15:15:00

수학여행 철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담당 선생님들이 몇 달 전부터 준비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이들의 경비에서부터 숙박시설, 관광코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일이기에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업무라면 피하고 싶은 업무 중의 하나에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에 누구도 업무를 맡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일이 또한 수학여행 관련 업무이기도 하다.

첫발령을 받고 운 좋게 그해에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물론 수학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그저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흥분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지난시절의 낭만과 추억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수학여행 가야 하나!

요즈음 일부 언론에서는 교사들이 수학여행을 핑계 삼아 여러 가지 이권을 업체로부터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검은 돈까지 받아 챙긴다는 기사를 곧잘 내놓는다. 이는 곧 교사 집단 전체의 무능과 부패, 나아가 대한민국 교사의 질적 수준을 폄하하는 범위로까지 곧잘 확대되기도 한다.

수학여행 때문에 학기 초부터 신경을 써야하는 일선학교 담당 교사들을 이런 말들에 낙담하기에 앞서 대꾸할 여력조차 없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대꾸할 여력도 없어요. 아이들 수학여행 준비 때문에 행정실과 업체, 그리고 학생들의 여러 가지 제반 사항을 준비하다보면 정말로 골치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 몹쓸 욕까지 얻어 먹다니 만약에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학여행 가지 않는 편이 낫겠네요.”
“이거 수학여행 가면 밤을 세워가며 아이들 감독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판에 무슨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는다고….”
“하지만 밖에서 교사들을 보는 시각이 쉽게 바뀌지 않으니, 어떻게 해. 그저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해야지.”

선생님들은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

아이들은 거저 수학여행이라면 멀리, 그리고 재미나는 곳으로만 가기를 대부분 원한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말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일부 대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경비나 기타 사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선생님 이번에 우리 수학여행 어디로 가요?”
“그건 너희들이 학생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 아니니.”
“그래도 선생님의 생각이 중요하잖아요.”
“선생님들이야 그저 너희들이 가자는 곳으로 갈 뿐이다. 선생님들이 너희들의 경비를 부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가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그럼 선생님 우리 이번에 독도나 외국으로 한 번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외국, 독도! 그건 경비나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렵지 않겠니. 더군다나 수학여행 경비 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잖아.”
“예이, 다른 학교에서는 일본이나 중국 간다고 하던데….”

아이는 그만 자신의 생각을 내본 것이 자못 후회스러운 듯 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외국이나 심지어는 독도로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기도 한다. 물론 학생회에서 이런 점들이 곧잘 반론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이런 생각도 무시하기에 어려운 경우도 곧잘 생긴다.

“선생님들은 이번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이놈들아, 그럼 우린 돈 안내고 무엇으로 밥 먹고 비행기 탄 단 말이야.”
“기껏해야 오육십명 되는 너희들 데리고 제주도 가는데 선생님들이 돈 안내면 너희들이 내 줄거니?”
“아이, 선생님도 농담이에요.”

첫 수학여행길에서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으며!

첫 발령과 동시에 떠난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학생시절에 생각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들과는 너무나도 차이나는 수학여행에 그만 추억은 커녕 두 번 다시는 수학여행은 가지 말았으면 하는 행사처럼 각인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우리하고 같이 밥 안 먹나요?”
“선생님들이 수학여행 와서 무슨 호의호식이라도 하는 줄 아니?”
“그럼 우리하고 같이 밥 먹나요.”

당시 수학여행 인솔 책임을 맡고 계시던 선생님은 아주 짧은 말로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던 당시 신임 교사인 나로서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솔직히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정말로 아이들하고 같이 밥 먹습니까?”
“서선생, 무슨 소리고. 그럼 밥 안 먹을꺼야.”

선생님의 짧고 퉁명스러운 답변에 그만 물음이 궁색해져 그저 그 선생님의 일과 진행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날 저녁 시간 아이들 지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난 뒤에야 그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 있었다.

“서선생, 내 말에 조금 마음 상했지.”
“아니요, 선생님. 그게 맞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어.”
“맞아, 수학여행 때문에 하도 학부모나 일부 단체들에서 많잖아. 솔직히 수학여행 와 보니 즐거워?”
“솔직히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모든 게 불편하네요. 왜 아이들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수학여행을 가자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후로 몇 번 수학여행을 더 갔지만, 밥을 아이들과 따로 먹은 적은 없었다. 물론 지난 학생시절 내가 보았던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은 애시당초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밖에서 들려 오는 수학여행 관련 교사들의 비리를 들으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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