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린 시절은 중학교도 입시를 거쳐야 입학할 수 있었다. 일정한 인원을 걸러내는 게 시험이다 보니 그때 6학년을 맡은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시키느라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결과가 발표되면 입학시험에서 낙방한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한풀이를 당하며 시달리는 것도 감수해야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니 자기반 아이들을 좋은 중학교에 많이 입학시켜야 한다는 중압감도 컸을 것이다. 그야말로 투철한 교육관과 사명감으로 묵묵히 2세 교육에 헌신했던 분들이기에 평생 제자들의 가슴 속에서 큰 나무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초등학교 은사님들을 모시자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스승의 날을 전후해 해마다 모임을 갖기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 것은 작년부터다.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연락을 취하며 은사님들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서울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은사님과는 술자리가 길게 이어졌다. 나중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뒤늦게까지 어울리며 회포를 풀었다. 작년 5월 15일에 있었던 은사님들과의 만남을 나는 ‘그랬을 겁니다’라는 짧은 글로 썼다.
사는 게 바빠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
은사님 모시는 자리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
세월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마음이 맞았습니다.
사는 곳에서
힘깨나 쓰는 친구들
은사님 앞에서는
개구쟁이가 되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
세월을 가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랬습니다.
38년의 세월 수십 번 넘나들어도
어깨동무한 손에 아무리 힘을 줘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주름살 깊게 패인 스승이
머리카락 반백이 된 제자가
안타까움 달래는 자리였을 겁니다.
지난 13일 여러 친구들이 동참해 은사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올해도 짧은 시간에 일사천리로 진행하다보니 부족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죄송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은사님들은 제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즐거워하셨다. 작년에 내가 썼던 짧은 글 '그랬을 겁니다'를 낭독할 때는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은사님들과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마워했다.
비록 오십 줄에 접어든 후에야 은사님들을 모시고 있지만 우리 친구들은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도 알고, 참되고 바르게 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각자 성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옛날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스승님들이 우리에게 바라듯 스승과 제자 간에 사랑과 이해, 관용과 포용이 함께 하는 마음의 선물만으로도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가는 세월 막을 장사가 없다’고 젊은 시절 우리를 가르쳤던 은사님들의 연세가 칠십대 중반을 넘어섰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건강이 최고란다. 은사님들이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