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문제, '공교육'에 책임전가 말라

2006.06.01 09:17:00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맞춤형 고액과외 등 사교육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명문대 입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우리의 대입수능시험 격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가 어려워지자 수험생 부모들이 바빠진 것이다. 과외 수요가 급증하자 새로 생긴 과목들만 집중 공략하는 ‘족집게형’ 진학준비반 등 고액의 사교육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일대일 개인교습은 18시간 강의료가 최고 4,000달러(약 380만원)나 된다니 시간당 21만원 짜리 초특급 과외인 셈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은 미국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이처럼 사교육 수요가 급증하는 원인을 절대 학교교육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대학입시 경쟁의 과열’에 따른 수요 공급의 원리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사교육과 최근의 조기유학 및 교육이민의 급격한 증가 등을 무조건 ‘공교육 부실’ 탓으로 책임 전가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취업을 위해 대학생의 55%가 과외를 받는다. 졸업을 앞둔 4학년(53.9%)보다 3학년 학생(59.6%)이 오히려 취업과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중․고생에 이어 대학생까지, 바야흐로 세대를 뛰어넘는 사교육 문제가 이제는 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 나아가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을 정도다.

교육부는 금년도 사교육비 경감대책 수립의 기본방향으로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한 학교교육의 신뢰제고’를 첫 번째로 꼽았다. 물론 공교육에 내실을 기함으로써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교육 급증이 ‘부실한 공교육’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대학생의 취업 과외 열풍도 무조건 ‘대학교육의 부실’ 탓으로 돌릴 것인가.

그래, 모두 인정하고 공교육 부실이 문제라고 하자. 아마도 공교육이 정상화 되서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 해도 현 교육제도와 교육정책 하에서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질 좋은 공교육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 자식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1등이 되고 나아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바로 하자. 사교육 증가의 원인이 어찌 ‘공교육’만의 탓인가. 사실 우리의 사교육 열풍은 대학서열화에 따른 과도한 대입경쟁체제 및 수학능력시험이 가장 큰 요인이요, 여기에다 사회전반에 만연된 고질적인 학벌주의와 사회․경제적 요인은 변했는데도 경쟁원리가 무시된 공교육 평준화 정책도 가세된 문제 아닌가.

사교육 얘기만 나오면 예외 없이 도마 위에서 ‘공교육’을 난도질하는 정부, 틈만 나면 ‘공교육 때리기’에 열중하는 언론은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 오늘날 공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부의 그 원인 진단과 처방 방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사교육 열풍 잠재우기 대책은 어쩌면 애초부터 ‘승산 없는 게임’인지 모른다.

사교육 문제, 정부는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정책을 내놓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냉정하게 진단하여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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