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지 벌써 3년째 접어들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은 학습자 중심을 기본으로 한 수준별·선택형 교육과정에 있다. 고등학교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과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1(10학년)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을, 고2와 고3은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도교육청별, 학교별 선택 교과를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수준별·선택형 중심의 교육과정, 그리고 학생들의 선택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는 것과 학생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점이 이전의 교육과정과 다른 부분이다.
피상적으로만 판단한다면 7차 교육과정은 이전 교육과정에 비해 상당히 학생 중심으로 편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편성이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교육과정상의 과목 시수와 편성을 따져보면 금방 드러난다.
우선 기존 예체능 과목 시수가 이전 교육과정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체육은 1학년에서 4단위, 음악과 미술은 각각 2단위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선택 중심으로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 음악과 미술, 체육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마치면 2, 3학년에서는 거의 교육과정에 편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명색이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라고 하지만 수능을 앞두고 있는 2, 3학년에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을 편성하는 것은 사실상 학생들 수능 점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극히 현실적인 발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 편성이 특정 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에 묵시적으로 확대, 실시되고 있다. 또한 각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들은 학부모나 학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수능에 무게중심을 두게 된다.
물론 학생들의 선택 과목에 대한 기본적인 선호 조사는 무시되거나 실시되지 않는 경우가 예사이다. 그렇다 보니, 교사 수급과 학생들의 전인 교육에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다.
본교에서는 1학년에서 체육을 매주 2시간씩 하고, 이후 2, 3학년에는 체육 과목이 아예 빠져 있다. 1학년 두 반을 일주일에 각각 2시간씩 4시간을 수업하고 나면 체육 선생님 수업은 끝난다. 법정 시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할 수 없이 체육 선생님이 음악이나 미술 과목, 그리고 여타 과목을 맡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물론 선생님들끼리 서로 모자라는 과목 시수나 넘치는 시수를 보충해 주기 위해 학교를 이동해 수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학교간에 서로 조건이 맞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극히 드문 경우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대부분 농·어촌 학교에 만연되어 있고, 도시 인문계 고등학교 역시 두말할 필요 없다.
이런 문제점이 이미 학생들 피부에도 와 닿는지, 본교 일부 2, 3학년 학생들은 “선생님 우린 왜 체육 시간이 없어요! 열심히 운동도 하고 뛰어다녀야 공부도 잘 되는데, 체육 시간이 없으니 공부할 맛도 안나요!”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또 “선생님 우리도 노래도 부르고 조각이나 판화 같은 것도 좀 해요. 맨 날 비디오나 영화 보려니 짜증나고 지겨워요” 하는 불만들이 여기 저기서 흘러나온다. 당연히 미술 시간이나 음악 시간에 부득이하게 체육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을 하니, 자연히 그 수업은 말 그대로 자유방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다른 수업 시간에 체육 활동을 대신해 달라고 교무실에 와서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들의 요구에 못 이긴 일부 선생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수업을 할애해 학생들이 뛰어 다니는 모습을 운동장 한 구석에 서서 우두커니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이상적인 교육 과정의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애당초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전에 교과 편성과 교사 수급 문제를 고려해 넣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수능과 주요 과목에만 집중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노래 부르며 세상을 그려낼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차단되어 버린 교육과정을 누가 과연 학습자 중심의 이상적인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