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앞에서 울상 짓는 아이들

2006.06.13 16:52:00

교실 앞 골마루에 공중전화기가 놓여있어 아이들이 통화하는 내용을 자주 듣게 된다. 그 덕에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전화기 앞에 줄을 서는 시간은 방과 후다. 대부분 집에 가면 금방 알게 될 일이거나 전화를 해야 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굳이 부모에게 전화를 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참을성이 부족하다.

인구문제 때문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핵가족시대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란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 참 밝은데 전화기 앞에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울상 짓는 아이들이 많다.

방과 후에 하는 통화 중 상당수가 ‘학원에 가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친구들과 놀고 싶거나, 친구에게 생일초대를 받았거나, 친구와 같이 숙제를 하기 위해 ‘이번 한번만 봐달라고’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정을 한다.

10여분 동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부모와 자식간에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학원에 꼭 가야 한다.’는 쪽으로 결말이 나니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쾅’ 소리가 들릴 만큼 전화기에 화풀이를 하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중얼중얼 부모에게 욕을 하는 어린이도 본다.

며칠 전에는 30여분에 걸쳐 몇 차례나 부모에게 전화를 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리 오랫동안 전화를 해야 하는 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사적인 일이라 개입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중에는 울음을 터뜨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울만도 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잘 걷지도 못하겠는데 부모가 모두 직장에 있는 시간이고, 열쇠가 없어 집에도 갈 수 없고, 더구나 아버지에게 아프다고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학원에 가라’는 대답만 들었다는 것이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출장중이기에 걷는 걸 불편해하는 아이를 학원까지 차로 데려다 줬지만 걱정이 돼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도록 한 후 담임선생님에게도 알려줬다.

돈을 지불한 부모로서 자식이 학원에 빠지겠다는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공부에도 지친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붙들어 놓는 것보다는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공부가 될 수도 있다.

매번 그러는 게 아니라면 가끔은 아이들이 학원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는 멋진 부모가 되어야 한다. 어른들이 너그러워지면 아이들이 전화기 앞에서 밝게 웃는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