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책을 찢어버린 선생님

2006.06.14 09:35:00

날씨 탓이었을까? 토고와 축구 경기를 벌일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한다며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응원 박수를 쳤다.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전교생이 꼭지점 댄스까지 하며 우리나라의 승리를 빌었다. 그런 마음도 잠시 교실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게 하고 우유를 먹게한 다음, 집에서 가져온 쑥떡과 옆반에서 돌린 생일떡까지 먹게 하고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2교시만 끝나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1학년들이라 간식거리를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절대로 먹지 못하게 하고 단것을 먹은 다음에는 이를 닦게 한 후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수업 시간이 침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제는 버릇이 되어서 아이들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줘서 참 대견하다.

이제 겨우 병아리인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규칙을 지키고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배우게 하는 일은 글자 하나를 읽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담임의 뜻을 제법 잘 따라주는 아이들이 되어가는 요즈음은 가르침의 보람을 하나씩 구슬로 엮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고약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아이들을 대하면 심장이 멎을 듯한 고통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어 힘들다. 3교시 에 있었던 일이다. 간식을 다 먹인 후 어렵사리 집중을 시켜서 수학 시간을 시작했는데 공부하는 속도가 빠른 우리 승현이가 주어진 공붓감을 다 했다며 내게 확인을 받으러 왔기에 숫자 글씨를 좀더 예쁘게 써서 가져 오라고 돌려 보냈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돌봐 주기 위해 아이들 사이에 들어가서 지도하고 있었는데 수학 책을 발로 지근지근 밟고 있는 승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인 직감으로 내게 반항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해서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녀석은 나를 다시 화나게 하고 있었다. 심지어 요즈음에는 심인성 두드러기까지 돋아서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가면 벌겋게 발진한 피부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닌데...

1학년 짜리 19명 속에서 한숨과 보람이 교차되는 나날을 보내며 착해서 웃고 귀여워서 예쁘면서도 반항하거나 약올리는 모습, 교묘하게 머리끝에 앉아서 속이는 버릇을 고쳐 주려고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 일상이 힘들어서 이젠 마음의 병까지 얻었는데...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예쁜 글씨를 쓰라는 충고에 하기 싫다며 수학 책을 발로 밟는 행동까지 용서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승현아, 왜 책을 밟았지?"
"......."
"숫자를 예쁜 글씨로 쓰라고 한 게 싫었니?"
"......."
"공부하는 책을 그렇게 밟으면 어떻게 해? 선생님께 화내고 있는 거지? "

어떤 말을 해도 묵묵부답인 녀석의 행동에 나도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발로 밟아 놓은 수학 책을 들고 손으로 쫙 찢어버렸다. 놀란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꾸중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바르게 가르치는 것에 이렇게 나쁜 방법으로 반항하는 어린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지금보다 더 심한 행동을 하게 되지 않겠니? 선생님은 이런 행동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너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으니 내일 당장 할머니나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오너라. 이렇게 버릇없는 행동을 고치지 못하면 너는 커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것 같아 이렇게 꾸지람 하는 거다.

내가 25년만에 너처럼 행동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 집에서도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니? 친구들에게도 함부로 행동해서 속이 상했는데 이제는 선생님에게도 대들다니... 이런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나중에 부모님께도 대들고 심하면 때리는 사람이 된단다. 친구를 때리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이렇게 꾸지람 하는 거야. 글씨를 예쁘게 쓰라는 선생님께 대드는 사람이니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함부로 하겠니?"

체벌에 반대하는 선생인 나였지만 그 순간만은 그 아이에게 손을 대고 말았다. 아마 내 자식이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그랬을 것이다. 더 이상 말하면 감정으로 아이를 때릴 것 같아서 다른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며 수학 시간을 마치고 4교시 공부를 준비했다. 의도적으로 모른 체 했지만 눈은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녀석은 4교시 공부 준비를 하더니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4교시 공부를 마치고 알림장까지 정리한 아이들은 점심 식사를 위해 급식실로 보냈다. 시무룩할 줄 알았던 녀석은 언제 그랬나는 듯 명랑하게 밥을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3월 초부터 지금까지 점심 식사를 깨끗하게 먹는 습관을 길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한 시간씩 식판을 붙들고 떠들며 먹지 않겠다는 아이들과 나는 전쟁을 치르는 점심 시간이다. 오전 공부 4시간보다 더 힘든 시간이 점심 시간이다.

차라리 점심 시간에 굶는 편이 마음이 편할 만큼 힘든 점심 시간. 10분 동안 깨끗이 먹고 나가는 해솔이가 있는가 하면 60분도 부족해서 안 먹겠다고 떼를 쓰며 한 번만 봐 주라며 차라리 음식을 버리고 매를 맞겠다는 최강과는 날마다 전쟁을 하곤 한다. 교육에는 일관성이 중요하므로 19명 모두가 깨끗이 먹을 때까지 지도하고 나면 지쳐버리는 점심 시간. 나를 그렇게 화나게 한 승현이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도 마지막까지 버섯을 먹지 않겠다고 수저를 들었다 놓았다 , 물을 마시러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마지막까지 참으며 야단도 치고 칭찬도 하며 기어이 밥을 다 먹게 했다.

어쩌면 밥을 먹이는 동안 우리 둘은 화해를 해버렸는 지도 모른다.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먹기를 기다리는 엄마노릇을 하다보니 슬그머니 귀여운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승현아, 나중에 승현이가 어른이 되어서 아빠가 되면 이렇게 밥을 잘 먹지 않겠다고 날마다 떼를 쓰고 선생님을 속 태운 일을 네 자식에게 말해도 괜찮겠니? 부끄럽지 않겠어?" 했더니 큰 눈을 굴리며 웃어버린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유난히 큰 눈에 성질 값을 할 것 같은 호랑이 눈썹을 보며 한 마디 더 했다.

"승현이는 얼굴을 보니 크게 성공할 얼굴이다. 그런데 성질이 고약한 데가 있어서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지. 참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을 때려서 미안해." 하며 밥을 먹는 녀석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성질을 부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새 책을 다시 주었다. 내 자식보다 한참이나 어린 1학년 아이에게서 받는 선생님의 스트레스를 학부모님들이 이해할까? 심지어 담임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면 혀를 내밀고 메롱하는 아이 때문에 골치라는 상급 학년 선생님에 비하면 그래도 1학년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25년의 교직 경력이 무색하게 공부 시간에 제자의 책을 찢어버린 성질 머리 사나운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이에는 이로 맞선 내 행동이 유치할 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판단으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말로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우격다짐으로 더 심한 행동을 보이며 극약처방을 내리고 집에 돌아오니 피부 발진이 재발하고 눈까지 침침하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 선배 선생님은 위로하신다며 살살 하라고 하신다. 제 잘못은 쏙 숨기고 선생님의 행동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면 오히려 당하는 쪽은 선생님이니 '적당히'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적당히 포기할 생각이라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게 평소의 소신이므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내 진정성이 양심에 비추어 한점 부끄럽지 않다면 그 아이에게도 통하리라는 것을! 나도 인간인지라 방법적인 면에서 완벽하게 교육적이지 못한 허물은 끊임없이 연구하여 고쳐 나가야 할 숙제일 뿐이다.

나는 아이들을 믿는다. 아이들이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염려로 훈계하고 타이르며 때로는 마음에 없는 체벌까지 행한다 하더라도 순간순간 교육적인 양심의 거울을 잘 닦아 놓고 싶다. 그래도 퇴근하기 전에 걸려온 승현이 할머니의 전화 한 통화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선생님, 얼마나 속이 상하셨습니까? 오죽하면 25년 만에 이런 아이는 처음 본다고 하셨겠습니까? 집에서도 내 말을 안 들어서 속이 상한데 선생님은 얼마나 힘드세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승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행여라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할머님과 제가 한 마음으로 서로 믿어 줘야 바른 길로 가게 합니다. 때로는 제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운하시더라도 이렇게 서로 대화를 하여 같이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과격한 행동이 있어서 고치는 중입니다. 점심 밥도 늦게까지라도 기어이 다 먹이고 있으니 아침 밥도 꼭 먹여서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제가 더 죄송합니다. 말로 타일러야 하는데 저도 무시 당하는 것 같아 기가 막혀서 때리고 말았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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