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심신장애나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유전이나 사고로 어린 시절부터 그와 같은 병을 앓으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모를 씁쓸함부터 느끼게 된다. 최근 들어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하지만 교육적인 부분에서는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
심신장애나 정신지체아를 위한 학교가 있다고 하지만 특정 지역에만 위치하거나 그 수가 매우 적어 실제적으로 교육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말 그대로 이런 아이들은 교육의 소외지대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이런 질병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어린아이들이 그들에게 맞는 교육적 기회마저 가지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말 것이다.
본교와 같은 농·어촌학교에는 심신장애나 정신지체를 가진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교육적, 제도적 배려는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 이들을 가르칠 교재도 없으며, 더군다나 이들을 위한 시설 배려는 꿈도 꿀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특수학급 등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교육 효과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수아동을 위한 교사나 교재, 그리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교육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이들 학부형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다수 극빈층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특수학교에 보낼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거나, 형편이 된다손치더라도 특수 교육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본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두 아이가 있다. 모두 여학생으로 유전적인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들과 때론 웃고, 때론 가슴 아픈 일들을 공유하면서 두 아이에게 가질 수 있었던 감정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애틋했다.
1학년에서 현재 3학년이 되기까지 하루도 결석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면서, 교사로서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학습능력, 신체능력이 극도로 부진하기 때문에 일반 수업 시간에 그들은 소외 아닌 소외를 당하며 이제까지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런 소외 의식조차 느낄 수 없었기에 어쩌면 3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지난 스승의 날에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웃으면서)"내(선생님) 날 아이가!"
"아이,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면서, 오늘이 바로 스승의 날이잖아요."
"우리 ○○이가 스승의 날도 알고, 고맙다."
그러면서 포장지에 싼 뭔가를 나에게 주더니 휑하니 가 버리는 것이었다.
교무실에 들어가 포장지를 열어 보니 예쁜 손수건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가 그렇게 주고 간 손수건은 현재까지 나에게 일상 생활의 소중한 동반자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얼마 뒤면 두 아이가 모두 졸업을 한다. 둘 다 누가 성심으로 돌봐줄 사람도 없고, 그리고 어디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제까지 무엇을 열심히 배워서 밥벌이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 아이를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이 아이들이 뭔가 배우고 익혀서 세상에 나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교육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평준화니 등급화니 하는 문제들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