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만나는 장소는 언제나 헌 책방

2006.07.13 09:00:00

나는 이상보박사님을 뵈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박사님을 알게 된 것은 서대문문인협회가 재 창립되면서부터 이었으니까 불과 2년 남짓인 셈이다.

첫인상은 그냥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은퇴한 노신사로 보였다. 그렇게 알고 지내면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차분하게 일의 전후를 살피면서 조정을 해주시는 모습에서 역시 원로다운 분이구나 싶었다. 그런 정도로만 알고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박사님을 꼭 뵈어야 할 일이 생겼다. 박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박사님 댁이나 아니면 편리하신 곳으로 만날 장소를 정해주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내가 내일 그 시간에 시내에서 일을 보고 들어올 시간인데, 오면서 들르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거기가 어디이신지?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홍제 전철역에서 내려서 4번 출구에서 조금 내려가면 [대양서점]이라는 고서점이 있어요. 거기에서 오후 3시에 만납시다."

문학 단체에서는 몇 차례 뵈었지만, 내가 단독으로 따로 만나기는 처음이기에 다방이나 조용한 곳으로 가시자고 해보았으나, 그곳에서 볼일이 있으니까 거기 들러야 한다면서 꼭 거기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이 드신 어르신을 모시는 자리로는 적당치 않아서 걱정이었으나, 한사코 그리로 오라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약속 시간 보다 조금 빠른 시간에 그곳에 갔다. 전에 두어 번 들른 적이 있는 서점이어서 낯설지 않고 사장님과도 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박사님이 여기 자주 들르시는가 보지요?"
"벌써 20년이 넘었나 봐요. 오가다 언제나 들르곤 하기 때문에 자주 들른다고 해야겠지요. 어쩜 자주 들르기보다는 아주 사신다고 해야 맞을는지 모르겠네요. 오랜 지기가 되었죠."
"그럼 주로 여기 오시면 무슨 책을 사시는 것입니까?"
"물론 전공 분야의 책을 찾으시기 때문에 보이면 가져다 놓기도 하지만 별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책을 보시면, 당신 식사하시는 것도 잊은 채 책부터 사시곤 하시지요."
"그렇게 많은 책을 사다가 다 어디에 쓰신대요?"
"주로 당신이 읽으시고는 도서관에 기증을 하시는 모양이에요. 아마도 여기서 사신 책만도 한 트럭 분은 사셨을 거예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요. 오셨다가 그냥 가시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늘 무언가를 사시곤 하시지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박사님은 그 많은 책들을 반드시 당신이 읽으시려고 만 사시는 것이 아니라, 후학들을 위해서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서 사신다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당신이 공부하던 시절에 책이 없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을 것이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만 하여도 3학년 시절 교과서가 없어서 선생님이 한 권, 우리 반 73명중에서 도시에 사는 형을 통해서 구해온 친구의 책 한 권 밖에 없는 국어 책으로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박사님도 책에 대해 그렇게 아쉬움을 가지신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학들을 위해서 도서관에 줄 책을 사는 것이라는 것이 주인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늘 헌 책<사실 요즘 책보다 더 귀하고 학문적으로 필요한 책일 경우가 많음>을 구해 가지고 후학들에게 기증을 하시는 분이라는 짐작이 간다. 그러기에 만나고 싶어서 연락을 드리면 언제나 만나는 장소는 바로 그 헌 책방 <대양서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박사님의 후학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고, 교수님의 참 스승 다운 모습이 부럽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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