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와 물질문명

2006.07.15 21:14:00


지난해 여름방학에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이 나라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문명이 발달하고 잘사는 선진국보다 상당히 높다는 말에 의아해 했었다. 우리나라의 50~60년대처럼 못살면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물질문명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번 돈으로 생일잔치를 위해 아낌없이 쓴다는 낙천적인 그들의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들 두 나라는 오랫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에 찌들고 기후 또한 무더워 쾌적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행복의 기준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배에 이어서 30년 가까운 근대사의 전쟁과 크메르 루즈의 집권으로 인해 세계 현대사에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앙코르와트유적을 관광 할 때 어린아이들이 달려들며 구걸을 하는 모습을 보았고 톤래샵 호수에 떠있는 수상 촌 난민들의 사는 모습은 인간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교육은 하고 있었다. 물위에 떠있는 건물에서 공부를 하는 학교도 보았고 집을 통째로 차에 싣고 이사를 가는 모습도 신기하였다. 배가 좀 나오고 핸드폰 하나만 들고 다녀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장님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 높은 빌딩을 짓고 호화주택과 값비싼 아파트에서 자가용을 타며 윤택하게 살면서도 노인들이 소외를 받고 이혼율은 높아만 가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으며 각종 흉악범은 늘어만 가서 불안감을 안겨주는 등 고독한 삶을 사는 것은 그들과는 너무 대조적인 삶이 아닌가?

그러면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일까? 3대 이상이 한집에 살며 좁은 방에서 살을 맞대고 잠을 자며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가사노동을 함께 하면서 살던 시절이 더 인간적이었고 인간의 정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오늘날 가족이 함께 아침밥을 먹는 날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고 TV나 컴퓨터가 인간의 정을 멀게 하는 것 같다. 자가용이 범람하여 별도로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인간다운 정을 주고받지 못하고 베트남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행복감을 덜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닐까?’하고 자문해 본다.
이찬재 (전)충주 달천초등학교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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