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7월 15일)부터 제헌절(7월 17일)까지 연일 계속되는 장맛비에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TV에서는 연일 기상특보를 내보냈다. 전국적으로 비로 인한 피해가 눈 덩이처럼 불어났고 인명피해 또한 커져만 갔다. 가족들과 함께 TV를 지켜보면서 더 이상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랬다.
특히 영동 지방은 지난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에 이어 다시 닥친 재앙에 주민 모두는 큰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리고 산사태로 인한 영동고속도로의 마비로 교통대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보도에 의하면,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너무 커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며칠 째 계속되는 장맛비는 여름 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는 화요일에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각 반별로 몇 명의 학생들이 수업에 지각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심지어 결석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영동지방에 비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많다는 것을 보도에서 들은 탓인지 요즘 나의 휴대폰에는 안부를 묻는 제자들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졸업 후 연락이 두절된 제자들로부터 걸러 온 전화였다. 그런데 오늘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교사 휴게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주머니에 잠들고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확인한 결과 액정 모니터 위에 나타난 전화번호는 낯설었다. 지역 국번으로 보아 서울에서 걸러 온 전화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몇 번이고 상대방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잘못 걸러 온 전화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저 OOO입니다. 기억나세요?"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제자의 목소리였다. 반가움에 제자의 이름을 재차 불렀다.
"누구라고? 분명히 OOO라고 했지. 살아 있었구나. 그래 그간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니?"
그 제자는 내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하였다.
"영동지방에 비가 많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 댁은 별 일이 없는지 궁금하여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 너는?"
"저는 잘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OO아, 잠깐만∼?"
"뚜- 뚜- 뚜-"
결국 제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아내지도 못한 채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신호음이 가지 않았다. 공중전화에서 건 모양이었다. 제자와의 아쉬운 전화를 하고 난 뒤 창 밖을 보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보다 빗줄기가 굵어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장맛비가 진종일 내릴 때면 생각나는 제자가 바로 이 아이였다.
제자는 지난 2002년 태풍 '루사'때 부모님을 잃어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부모님을 여의고 난 후, 제자는 말수가 적어졌고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창문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시울을 붉히곤 하였다. 제자의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면 비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제자가 졸업한 이후로는 그 누구로부터 제자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인지라 내심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 담임으로서 좀더 관심을 갖지 못한 것에 후회가 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오늘 그 제자로부터 전화가 걸러 온 것이다. 비록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비가 올 때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가야 할 제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번 비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자처럼 아픈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까. 이럴 때일수록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과 관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정부는‘인재(人災)냐, 천재(天災)냐.’를 논하기 전에 수재민을 돕는데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마음이 더 이상 곪아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