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2006.07.27 10:20:00

학교가 아이들과 교사들만의 전유 공간이라는 인식이 사라져감에 따라 학부형의 참여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특히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학부형들이 학교에 직접적으로 참석해 학교 운영이나 학생들의 복리를 위해 여러 가지 의사소통의 길을 마련해 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 학교의 현 주소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교와 같은 시골의 조그만한 학교에는 아직도 학부형들의 발걸음이 그렇게 쉽지 않은 듯하다. 마치 자식을 둔 것이 당신들의 죄라도 되는양 부끄럽게 생각하고 담임이나 여타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 같다.

첫 발령지에서 첫 담임이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담임을 맡고서 유독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들이 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와 병원을 오고간 적도 있고, 피해자 학부형들에게 머리 숙여가며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도 수 차례 있었다. 여하튼 그 시절 이런 저런 일들로 힘든 1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선생님 저 ○○ 엄마예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 드려 죄송해요."
"아닙니다. 어머니,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시고."

며칠 전 한 아이의 학부형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재 맡고 있는 아이의 학부형도 아니고 또한 벌써 6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것도 학생도 아닌 학부형한테 전화를 받고 보니 약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전화 좀 드리고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별 말씀 다 하십니다. 그래 ○○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첫 담임을 맡았을 때 ○○는 학급 반장을 맡았었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멋 내기 좋아하고,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일명 농땡이 아이들 중에서 짱 역할을 하는 아이였다.

공부만 안 했지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그런 아이로 기억되는 아이였다. 2, 3학년 때는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 있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었다. 다만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바로 자원해 간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이놈이 군대 갔다 오더니 정신을 차렸는지, 공부를 하겠다고 하네요. 그것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겠다고 해서, 이렇게 염치없이 전화 드렸습니다."
"○○이가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기본기가 되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아마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은 좀 의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저는 ○○이가 군인이나 태권도 사범이 되겠다고 종종 이야기하던 게 기억이 나는데…."
"예, 저도 ○○이가 태권도 사범이나 했으면 했는데, 이놈이 글쎄 자기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같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당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나 행동에 자기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꼭 국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군대 제대할 무렵부터 계속 하고 있어요."

"이거 제가 아이에게 혹시나 좋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진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가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또한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도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가 종종 선생님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군에 있으면서 선생님 한 번 찾아간다고도 했는데, 모르겠어요. 참 선생님, ○○이가 몇 달 전부터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는데, 없는 형편에 아이 뒷받침하기도 그렇고, 군대까지 갔다 온 놈이 공부한다고 하니 모습이 좋지 못하고 해서 선생님에게 의논드리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들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의 의지라고 봅니다. 벌써 몇 달 동안 공부한 것으로 봐서는 제대로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믿어 보세요. ○○이 잘 할 겁니다."

이렇게 약 1시간 가량을 통화했다.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아이의 진로에 대해 섣부른 판단으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한 아이의 장래가 달려 있는, 그것도 내가 현재 맡고 있지도 않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그 아이와 부모에 대해 지나친 참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그 아이가 학교 다닐 때 교사로서 내가 최선을 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책감도 든다.

군대까지 갔다 온 ○○이가 이제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다만 곁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 선생님이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내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우며 좋은 결말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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