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학교’에 참여하거나 담임에게 ‘특수교육’을 받는 소수의 어린이들을 제외하면 방학 중이라 학교에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직무연수나 대학원출석 등 개인연수를 하고 있어 근무하는 사람 수도 적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오던 학교였지만 방학 중에는 산속의 사찰이 연상될 만큼 조용한 게 정상이다. 그런데 ‘밥 먹으러 학교에 간다’고 하니 웬 뚱딴지같이 엉뚱한 소리를 하나 의구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내가 올 3월부터 근무하고 있는 문의초등학교는 특별하다.
방학 중이지만 근무자 외에도 여러 명의 직원들이 학교에 나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공문을 처리하고,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교육도서를 읽고, 소파에 둘러앉아 그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인생살이도 얘기한다. 그래서 항상 학교에 활기가 넘친다.
밥 먹으러 학교에 가는 사람 중 한명이 바로 나다. 모처럼만에 집에서 쉬는 날도 “학교에 점심 맛있게 해놨어요”라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장 학교로 향한다. 그러니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그렇게 잘 먹느냐’고 아내가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
못쓰는 유치원 책상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오이ㆍ고추ㆍ고추장ㆍ김치 등의 반찬과 매일 바뀌는 그날의 주 메뉴를 올려놓으면 어느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상 주위로 십여 명이 둘러앉으면 그 모습이 땀 흘려 일한 후 논이나 밭두렁에서 밥을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던 시절을 꼭 닮았다.
옛날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배고픈 시절에는 그랬다. 맛있는 반찬을 누가 먼저 먹을까 눈치를 봐가며 숟가락 든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그러고도 늘 배가고파 헐떡거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밥을 먹으니 밥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주 메뉴가 닭죽에서 삼계탕으로, 돼지고기두루치기에서 삼겹살구이로 매일 바뀌는데도 이유가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후 후식을 먹는 자리에서 꺼내는 말이 있다.
“내일 내가 닭 두 마리 사올게. 아냐, 내가 돼지고기 세근 사올게”
집에서 농사지은 것이라고 찹쌀도 가져오고, 직접 담근 것이라며 맛이든 열무김치도 가지고 온다. 이렇게 네 것, 내 것 없이 사니 서로 편하다. 거기에 학교 텃밭에서 길러 완전히 무공해 식품인 고추, 오이, 가지, 상추도 상위에 오른다.
며칠 전 다른 학교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을 얘기했다. 모두들 요즘도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부러워한다. 그런 학교라면 ‘당연히 직원분위기가 좋을 것이라며 그런 직원들과 근무하고 싶다’는 의견도 한결 같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으로 봐 이런 분위기는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가 그냥 이뤄진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우리 직원들이 방학동안까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행정실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는 신정희씨 덕이다.
평소 하는 행동이나 일처리도 그렇지만 방학동안에도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데 늘 앞장선다. 무더운 여름날 귀찮을만한데도 여럿이 어울리는 것이 좋다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 직원들도 정희씨를 다 좋아한다.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기 전에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이렇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 마침 그런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사람 사는 데는 오순도순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우선이다. 직장분위기만 좋으면 일의 능률은 저절로 오른다. 우리 직원들은 오늘도 ‘같이 부대낀 기간은 짧아도 인연의 끈은 길어야 제 맛이 난다’는 인생살이를 실천하며 행복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