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하게 PC방 좀 보내주세요"

2006.08.28 13:06:00

가끔 글쓰기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컴퓨터실에 가게 된다. 요즈음 아이들 연필로 쓰는 것 보다 컴퓨터 타자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컴퓨터실로 가게 된다. 물론 아이들이 글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한 도구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실에 들어서면 기분이 나빠진다. 무엇보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뿜어내는 케케한 냄새와 뜨거운 열기, 도난방지를 위해 환기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닿아 놓은 창문과 커튼으로 인한 컴컴하고 음습한 분위기,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반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고물덩어리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컴퓨터 들여만 놓고 정작 업그레이드는…

학교현장에 새로운 운영체제를 탑재한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상관이다. 그 이전에는 몇몇 컴퓨터 관련 선생님들만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지, 대다수의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그저 성적 처리용 기자재이거나 전시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상관으로 많은 컴퓨터가 학교에 공급되었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컴퓨터가 애매모호한 용도로 제공되었다. 불과 6-7년 전이었으니 아마도 새천년을 즈음해서 일선 학교에 많은 컴퓨터가 공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컴퓨터 관련 일을 학교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새롭게 들어오는 컴퓨터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 오른다.

당시에는 그런 새로운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에 아이들도 교사들도 선 듯 나서서 다루기 어려운 점들이 많았었다. 따라서 컴퓨터 관련 교사 연수가 봇물 쏟아져 나와 성행 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때보다는 덜하지만 많은 컴퓨터 관련 연수가 진행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즉 그렇게 들어온 신형 컴퓨터는 불과 2-3년 사이에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구형 컴퓨터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대당 백만원이 넘는 컴퓨터들이 제대로 사용 가치에 부응하기도 전에 고물덩어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들여놓은 컴퓨터를 모두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컴퓨터를 다시 들여놓는다는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낳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킬 예산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었다.

선생님, 제발 인터넷 속도 좀 올려 주세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다수 학교 현장의 컴퓨터실에 갖추어져 있는 컴퓨터들은 컴퓨터 교체 시기를 놓친 사양이 뒤떨어진 컴퓨터가 대부분이다. 물론 신설학교나 정보화 관련 학교는 다행히 최근 나온 컴퓨터를 갖추어 놓을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사양이 현저하게 떨어진 컴퓨터를 갖추어 놓고 방치하다시피 한 경우가 허다하다.

“선생님 제발 컴퓨터 좀 바꿔주세요. 이거 원 타자 연습 밖에 할 게 없으니…”
“여기가 컴퓨터실이 맞기나 한가요. 차라리 컴퓨터 고물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이놈들아 그래도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돈을 들여 구입한 컴퓨터들인데, 모두 고물로 취급하다니….”
“사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몇 년전에 몇 백만원 주고 사면 뭘해요.”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될 뿐더러, 된다손 치더라도 이거 원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어쩌겠니. 그렇다고 학교에서 뾰족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업그레이드를 하자니 그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이들의 성화에 반 핑계로 겨우 넘어가기 일쑤이다. 다행히 한글 타자 프로그램이나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서 글쓰기 정도만 겨우 할 정도였다. 학교 장학행사나 외부 손님들이 와서 인터넷을 활용을 수업실연을 보여줄 경우에는 그날 학교는 컴퓨터 바꾼다고 일대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론 고물덩이 컴퓨터 한 대가 학교의 얼굴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불신하고 믿지 않아서 사교육비가 증가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우리 현실이다. 컴퓨터 공급 문제부터도 그렇다. 갈수록 많은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가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이전 구닥다리 컴퓨터를 들이대놓고 수업을 한다면 이는 곧 우리 학교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불신하고 외면하는 하나의 결정정인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교육행정의 현실은 그런 기반을 제대로 닦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고물덩어리가 되어 버린 컴퓨터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분명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 PC방 가서 숙제 하게, 자율학습 좀 빼 주세요. 학교 컴퓨터로는 이거 원 숙제를 할 수가 없으니….”
“숙제 하려고 PC방을 간다 말이가, 집에가서 하지.”
“집에 컴퓨터가 고장나서 말이에요. 제발 좀 허락해 주세요. 숙제 못하면 수행평가 점수 못받는단 말이에요.”

수행평가 때문에 PC방에 가야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는 한 학교는 아이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만, 허다하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물론 나라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학교에 신형 컴퓨터를 공급해 줄 수 없는 상황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컴퓨터 공급 계획을 세우고 집행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선 교육 행정 당국이 적재적기에 컴퓨터를 공급하고, 나아가 업그레이드 문제도 고려했다면 조금 더 재정적인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불만도 감소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컴퓨터는 분명 하나의 학습 수단이다. 수단이 목표를 전도해서는 안 되지만, 때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 수단이 전부로 간주될 수도 있다. 가끔은 그런 우리 교육현실이 개탄스럽지만, 그것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정작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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