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교실에 빛나는 형광등, 저홀로 외로워

2006.09.30 13:09:00

내가 가난한 시절에 성장했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교직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빈 교실에 형광등이 환하게 켜 있는 것을 보면 전기세가 많이 나올 것 같아 지레 걱정을 한다. 어쩌면 빈 교실에 형광등 몇 개 켜 있다고 해서 월말 전기료 고지서에 얼마의 비용이 더 추가될 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 정도로 절약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의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나도 학교에서 나이가 꽤 많은 축에 속하니 괜히 노파심이 발동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생활 형편이 예전보다 나아지고 교육 여건이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절약과 절제는 언제나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교실을 비우고 운동장이나 과학실로 수업을 받으러 간 빈 교실 옆을 지나다 보면 천정에 매달린 선풍기 네 대가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뿐인가? 형광등 10여 개가 환하게 빈 교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실 문을 열고 에어컨 스위치를 드려다 본다. 역시 에어컨도 켜져 있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민이 낸 세금을 들여 설치한 시설물들이다.

그렇다면 그 관리에 있어서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텐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 학교 측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담임선생님도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겠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소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이러한 모습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간직해야 할 중요한 덕목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요새 교육이 지나치게 진학위주로 전개되다 보니 기본 생활 교육이라든지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인성교육의 기초는 학교 기본 생활 습관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는 아이들, 수업시간에도 교사의 눈을 피해 MP3를 귀에 꽂고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나의 걱정은 아날로그 시대의 낡은 사고에 불과한 것인가?

빈 교실에서 저 홀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솔선하여 끌 수 있는 사려 깊은 아이들, 쓸 데 없이 켜져 있는 선풍기나 에어컨을 자진해서 끌 수 있는 건전한 생활 습성이 빨리 우리 학생들 사이에 정착되어야 한다.

교실의 백묵도 써서 소비되는 것 보다는 바닥에 떨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까짓 백묵이 몇 푼이나 되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묵 한 개가 떨어져 부러질 때 아까워하는 절약정신, 작은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사려 깊은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가난 속에 살아온 기성세대는 알 것이다. 종이 한 장 연필 한 개가 얼마나 소중한지. 백묵을 두세 통씩 교실에 비치해놓고 써서 없어지기 보다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다가, 혹은 청소하다가 실수로 떨어트려 버리게 되는 백묵을 보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교육의 결과다.

가끔 청소시간에 분리수거장에 나가본다. 내버려지는 학교 쓰레기 중엔 방금 산 듯한 책도 부지기수고 체육복 운동화 레코더 등 당장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분리수거 담당자들도 그것을 일일이 수거해서 재활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게 된다. 근면과 절약을 강조하던 것이 엊그제이고 여전히 그것이 악덕이 아닐 텐데 요새는 관심도 없다.

우리는 불가의 수행자들이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것이 꼭 살림이 궁색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작은 실천 하나가 바로 수행자의 바른 자세인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마음의 평상심을 간직하려면 바로 그런 생활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질서하고 낭비적인 학교생활은 곧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는 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건전한 생활태도, 건강한 도덕률이 내재할 때 개인은 아름다운 꿈을 간직하게 되고 우리 사회는 원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부터 배려하는 학생들의 고운 심성이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기대해 본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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