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2006.10.07 13:31:00


어느 때부터인가 가족 나들이가 사라졌다. 아침 식사 시간도 제각각이다. 가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절감하지만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 아니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 존경하는 은사님의 말씀, "자식은 가르치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주는대로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가족 나들이가 많았다. 수원 근교에 있는 산행도 제법 하였다. 그러던 것이 중학생이 되더니 이제 부모와는 따로 논다. 부모와 깊은 대화를 나누려 들지 않는다. 그냥 일상대화에 불과하다.

중2 아들은 오랫만의 저녁 회식도 사양한다. 부모만 가란다. 함께 가는 것이 귀찮다는 표정이다. '그 대신 무엇을 하는가'를 관찰하니 친한 친구와의 채팅, 게임, 야간축구 등이다. 부모와의 어울림이 컴퓨터, 친구와의 놀이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아니 부모와 함께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아들을 간신히 꼬셔, 설득해, 반협박으로 오대산 비로봉(1,563m) 등반을 같이 하였다. 더 이상 방치하다간 엇갈려 나가는 폭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박 2일 코스로 잡았는데 첫날에는 횡계에 있는 동양 최대의 삼양대관령 목장을 들려 추억만들기를 하였다.

둘째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산행을 서둘렀다. 산행 도중에도 억지로 온 것에 대한 불평불만이 이어진다. 아들의 불만을 수용하면서 대화나누기를 시도하지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평상 시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된 탓이리라.

다행이 마음까지 빼앗아 버리는 오색의 단풍과 다람쥐들의 귀여운 환영인사가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중대사자암, 적멸보궁에 이르자 아들이 앞장서 산을 오른다. 부모는 아들 따라가기 바쁘다.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중간중간 땀을 식혀가며 먹는 간식과 사진 촬영은 대화의 물꼬를 트게 만들었다. 상원사(上院寺) 초입에서의 대화와는 많이 달랐다. "상훈아, 저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드니?" "몰라"에서 "요즘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니?" "엄마가 옷 사주었을 때."로 바뀌었다.

정상을 힘들게 정복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길에 점심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것이 가족애구나!'를 실감하였다. 그 동안 마음 속의 대화가 너무 부족함을 절감하였다. 한 아파트에서 생활할 뿐 '너는 너, 나는 나'식으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10월 4일자 추석 테마기획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요?'가 눈길을 끈다. 스스로 반성해 본다. 우리집에서 아버지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자식 눈에 비친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돈벌어 오기, 자식 공부 채근하기, 장시간의 컴퓨터 게임 억제시키기, 방정리 안한다고 인상쓰기 등. 자식이 좋아하는 것은 별로 없다. 이것이 오늘날의 아버지 상(像)은 아닌지?

김경섭 대표(한국리더십센터)는 "한국에서의 아버지는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피로감, 자식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며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교사상에 물들어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극복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증오감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반성해 봄직도 하다. 혹시 권위주위에 물들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돈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대화를 한답시고 일방적 강요만을 하지 않았는지? 아버지되려는 공부는 제대로 했는지?

김 대표는 말한다. 아버지의 자질은 한 마디로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가족 구성원에게 자기 가치관을 주입시킬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자녀 자질을 가꿔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식들과 대화를 하려면 인내심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맞는 말이다. 강요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마음이 통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 자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식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믿음'과 '신뢰'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가 최인훈은 말한다. "가정이라는 곳은 서로서로 상처를 핥아주고 대화하며 끊임없이 교류하는 사랑의 격전장이자 우리 현대인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그는 가족 해체의 대안으로 '희생적인 가치관 정립'을 말한다. "가정이라는 곳은 매일 마주치고 부딪치는 집단이다. 그래서 희생을 감내하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가족끼리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서로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절실함을 나누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1박 2일간 여행 경비가 제법 들어갔다. 아들과 마음이 통하고자 인내하며 대화를 나누고자 아들의 요구사항을 많이 들어주었다. 호텔에서의 숙박, 식사, 산행코스 등에서 부모가 양보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아들도 그 마음을 아는지 상원사 관대(冠帶)걸이에서 자기옷을 그곳에 걸고 몇 번의 사진 포즈를 흔쾌히 들어 주었다.

"아들아, 고맙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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