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호박나무엔 추억이 주렁주렁

2006.10.09 08:36:00


추석명절을 맞아 고향마을(청주시 내곡동)을 다녀왔다. 1983년 청원군에서 청주시로 편입되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만큼 발전이나 개발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래서 아직은 100여 호의 마을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추석날(6일) 오후에 농촌 풍경을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동네 한복판에서 큰 '호박나무'를 발견했다. 죽은 은행나무 꼭대기 부분에 달린 호박과 은행나무를 감싸고 있는 호박줄기가 큰 호박나무를 만들어 놨다.

마을을 끼고 있는 들에서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소리가 들려왔다. 논두렁을 따라 억새들이 아름답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논두렁이 높은데다 억새들의 키마저 훌쩍 자라 들판에서 하늘거리는 억새들의 모습이 하늘과 맞닿은 듯 보인다.

밭둑 한편에 심어져 있는 아주까리는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더 새로웠다. 잎은 나물로 무쳐먹거나 봉숭아 물들일 때 손톱을 묶는데 사용했고, 열매에서 짜낸 아주까리기름은 등잔불 원료나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로 사용했었다.

옛날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먹을거리였고, 지금은 성인병인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게 일명 뚱딴지라고 불리는 돼지감자다. 논두렁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돼지감자의 노란 꽃이 들판의 황금색 물결을 더 아름답게 한다.

아내에게 고향의 참모습을 보여주려고 마을에서 산 너머에 있는 들판으로 나갔다. 들판 건너편 농지였던 곳에 오창 신도시가 들어서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들판을 가로지른 중부고속국도에는 추석날부터 귀경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농사짓는 방법도 옛날과 많이 다르다.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예쁘게 꽃을 피운 호박들이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땅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고생을 해도 소득이 적은 게 농촌의 현실이라니 안타까울 뿐이다.

들판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친구가 술 한 잔 하고 가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가을이고, 추석명절이라 우산 그늘아래서 친구네 집을 지키고 있는 강아지마저 행복해 보인다. 우산으로 만들어 준 그늘도 집을 지켜주는 강아지에 대한 주인의 배려였으리라.

나이 먹어가며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옛날 모습 그대로 반겨주는 고향이 있다는 게 행복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