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과 토요일을 빼고는 보충수업 시간이 모두 잡혀 있기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방과 후 야간 수업을 한 터라 운전을 하면서 연신 졸음과 하품이 쏟아진다.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아프게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대략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오전 8시 5분에 시작하는 보충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오전7시 5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도 학생들보다는 먼저 와서 기다려야한다는 마음에 아침이 정신없이 흘러가 버린다.
선생님 졸려 죽겠어요!
아침 보충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제 막 헐레벌떡 하면서 들어오는 아이들, 아예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 등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풍경이 연출된다. 대부분 수업과 공부에 지쳐버려 얼굴에 생기라곤 없어 때론 그냥 자게 놔두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진다.
“애들아! 일어나라 상쾌한 마음으로 공부 시작하자.”
“아이 선생님, 조금 있다 해요. 졸려 죽겠어요.”
전날 방과 후 수업 때문에 늦게까지 수업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에 피곤이 그대로 묻어난다. 방과 후 학교가 실시되고,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인다는 목표가 일단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통 수업으로만 도배된 교육과정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사교육 절감과 공교육 내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래도 졸음을 이겨가며 즐겁게 해 보자. 선생님도 노력하마.”
애써 아이들을 달랜다. 강제로 아이들을 깨우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버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로 달려온 아이들에게 졸음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혹은 체벌을 통해 졸음을 깨우겠다는 생각은 수업을 하지 않았으면 안 했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럭저럭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졸음을 깨워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나와의 몇 분간의 대화와 스트레칭으로 졸음을 이겨가며 수업에 참여한다. 그나마 그런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스럽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기초실력이 부족한 아이들이라 공부에 선 듯 재미를 붙일 수 없을 터인데, 그래도 참으려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 숙연한 마음마저 들 때도 많다.
방과 후 학교가 운영되면서 달라진 현상 중의 하나는 수업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사교육에서 하던 것을 학교 내로 끌고 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수업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실정이다.
“선생님 도대체 학교 오면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통 수업, 수업뿐이니….”
“학교에 오면 수업 받는 것이 정상 아니니. 뭐 수업 시간 좀 늘었다고 너무 엄살떨지 마라.”
“선생님 엄살 아니에요. 아침 보충수업, 원어민 영어 화상수업에 야간 선택형 학습까지 온통 수업뿐이니, 정말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아요.”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방과 후 학교 운영이 시작되고, 수업 시수를 헤아려 보니 많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었다.
지방의 학교여서 그런가, 학교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인지는 몰라도 야간 선택형 학습까지 개설해서 아이들을 불러들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 아이의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니었다.
학생들의 일과는 이렇다. 오전 8시 5분에 보충수업을 시작해서 정규 수업이 오후 4시 40분에 끝나는데, 보충 1시간에 정규수업 7시간, 정규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마치고 오후 5시 40분까지 원어민 영어 화상 강의 1시간, 저녁을 먹고 오후 6시 40부터 11시까지 지자체와 학교가 연계해서 운영하는 야간 선택형 수업 4시간, 총 13시간의 수업시간으로 짜여 있다.
수업시간만 잔뜩 늘려 놓는 것은 아닌지
총 13시간의 수업을 받고 집에 도착하면 거의 자정이 된다고 한다. 그제야 자기 공부할 시간을 내어 잠시 책을 뒤적이다 보면 금세 새벽 1시∼2시가 넘어간다고 한다. 잠이 눈을 붙이고는 아침 보충수업을 위해 아침을 먹다말고 달려 오는 것이다.
“선생님 정말 죽을 맛이에요. 다들 하니까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너희들이 선생님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는 것 같구나.”
“방과 후 학교 하면 돈도 적게 들고 수업도 재미있는 것 많이 할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고 그리고 온통 교과 수업만 들으려고 하니 정말 힘들어요.”
아이들의 고충은 알만 하였다. 실제 방과 후 학교가 운영되면서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는 대부분 교과 수업 시간이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학원이나 사교육으로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들이기 위해 야간 강좌를 개설해야 하고 또 다른 다양한 수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늘어난 수업 시간 때문에 밤낮으로 수업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수업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대다수가 희망에 의해서 한다고 하지만 입시를 앞둔 아이들이 희망에 의해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란 애시당초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방과 후 학교가 벌써부터 이런저런 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늘어나 버린 수업 시간 때문에 학교 일정은 파행을 겪고 있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교 수업과 사교육의 이중적인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실제 하루 13시간이라면 절반 이상은 수업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교육비도 줄이고 공교육을 내실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에 13시간이라는 수업을 받아가면서 정작 그들이 이룰 수 있는 꿈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