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일선교사와 장학사들을 대상으로 10월 10일 서울대 사범대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시정책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통합교과 논술을 입시에 상당한 비중으로 반영하겠다는 서울대의 입시 정책 의지를 반영하기 위한 자리였다.
또한 논술 반영에 대한 일선 학교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에 대한 자구책을 세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선 학교 교사들과 관리자들은 그런 서울대의 정책이 향후 공교육의 부실과 사교육의 조장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서울대가 논술을 입시의 중요한 잣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학생들을 뽑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이는 자칫 논술로 인한 사교육비의 급증과 아울러 합격자가 일부 특수한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될 수 있는 이른바 교육의 양극화 현상을 부채질 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작 그들의 철옹성을 지키기 위한 리그는 아닌지
현행 학교생활기록부와 수능의 변별력에 그다지 신뢰성을 갖지 못하는 세칭 일류대학들이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논술을 입시의 최고 대안으로 꼽으며 앞 다투어 입시안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작 논술에 대한 일선 중․고등학교의 교육환경은 그 기초에서부터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논술이 여타의 시험보다 그 타당성에 있어서 우월하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명 ‘리터러시(literacy)’교육에 대한 다양한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좁게는 읽고 쓰는 능력, 넓게는 문제 해결력을 지칭하는 이 개념은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쓰는 능력은 그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능력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교육현실과는 다르게 우리의 중고등학교 교육 현실은 대다수가 객관식 시험에 치중해 온 터라 그 간에 한 번도 진지하게 읽고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즉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교육적 기반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쓰기에 대한 교육기반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논술이라는 시험을 갑작스럽게 일선 학교 교육현장에서 무조건 교육시키고 그리고 입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반영해 그 당락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성급한 결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단순히 몇 시간의 논술 연수를 시켜 그런 환경을 만들겠다고 하는 서울대의 진의가 뭔지 아리송할 뿐이다.
오랫동안 입시 현장에서 근무한 몇몇 선생님들은 다들 몇몇 대학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서울대가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뻔해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죠.”
“정작 학생들을 위한 개혁인가, 그들의 편의를 위한 개혁인가 의심스러울 뿐이야.”
“논술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상당히 자의적인 평가 도구가 될 수도 있는데. 정작 대학에서 논술에 대한 분명한 평가 잣대는 내놓지 않고 논술 시험만을 고집하는 이유에는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적어도 한 학생들의 논술문을 제대로 된 평가안을 세우고 평가하기 위해서 몇 시간이 걸리는데, 도대체 어떻게 수백 수천의 학생들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어. 그냥 학생 이름만 보고 평가하겠다는 건지….”
입시지도를 해 오신 대다수 선생님들은 논술시험이 가지고 있는 평가 잣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세칭 일류 대학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늦더라도 제대로 갖추어 놓고 시작해 보자
무엇보다 논술이 입시의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논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일이다. 교과과정의 개혁, 논술과목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교사 교육, 객관식 위주의 시험 제도 개혁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 글쓰기를 일상의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회사,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대받고, 나아가 그런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세칭 통합논술이라는 것은 교과를 아우르는 글쓰기 방식이다. 그만큼 다양한 교과에 대한 수준 높은 글쓰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나 강사들도 매우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제시하는 통합 논술의 수준도 가히 상상을 초월한 정도의 전문적인 내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 때문에 논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희석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특정 고전 부분을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논술 시험에 그대로 외어서 쓰는 경우가 실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형식만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껍데기 글쓰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곧 논술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형식에 대한 합의도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 다른 부실 교육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성급하게 시작해서 부실의 연속만을 낳아온 것이 최근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제발 논술교육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하자. 글쓰기가 생활화 되어 있지 않은 의식 속에서 억지스레 짜낸 글은 또 다른 논술의 병폐를 나을 뿐이다.
정작 서울대가 그들의 기득권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 이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사심을 버렸으면 한다. 자꾸만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한다면 결국 우리 교육은 끊임없는 사교육의 홍수 속에서 신음하다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