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등불’

2006.10.18 13:36:00

아침 출근 시간이다. 20m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시야가 좁다. 짙은 안개 속에서 승용차의 긴 행렬이 전조등 안개등을 켜고 줄을 이어 달려온다. 보이지 않다가 가까워져서야 보이는 불빛이다. 이맘때가 되면 서해안 지방에는 으레 안개가 자주 낀다. 추석 명절 전에 서해안고속도로의 참상이 아직 눈에 선하다.

협소한 왕복 2차선 도로다. Y자로 갈라지는 교차로에 접어들었다. 좌회전해야 한다.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들의 행렬이 끝나는 것 같아 좌회전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차량한대가 나타났다. 조금만 빨리 출발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차는 미등도 켜지 않은 채 다가온 것이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뿌연 안개 속에 빠른 속력으로 육중하게 다가오는 차가 검은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전조등, 비상등, 안개등까지 켜고 있었는데…….

어렸을 적 어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시각장애자가 밤에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다. 왜 그럴까? 그 분은 어차피 낮이나 밤이나 똑같이 어둡고 등불도 보이지 않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낮과 밤이 똑같은데 왜 귀찮게 등불을 들었을까. 등불 없이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인식시켜 나와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들었다.

미등도 켜지 않은 채 주행하는 사람은 본인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차량들의 불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료 절약을 위해 각종 등을 켜지 않았는지 무심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차량 운전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내 차를 인식시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런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본인도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된다. 사소한 무관심으로 큰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것이다.

출근길 인적 없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하고 있을 때 갓길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들을 볼 수 있다. 또 앞차를 따라 연쇄적으로 신호위반하는 차량들도 많다. 시골길 좌우를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바쁜 마음에 신호위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규정을 지키고 멈춰 서있는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교통규칙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나만 못난이일까?

‘시각장애인의 등불’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내 편리를 위해 남에게 불편이나 손해를 끼치게 한다면 밝고 명랑하고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나의 불편이 곧 타인을 위하고 배려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아야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규칙이라도 잘 지키는 것이 곧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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