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논술 대란

2006.10.27 16:22:00

‘어처구니’의 사전적 의미는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으로 ‘어처구니 없다’는 보통 ‘어이없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본래 ‘어처구니’란 우리 전통한옥이나 궁궐의 용마루 끝과 처마 끝에 마무리하는 십장생의 동물 조각으로 중국 당 태종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귀신을 쫓기 위해 이를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어처구니 없다’는 기와장이들이 궁궐을 지을 때 이 중요한 어처구니를 종종 깜박 잊고 올리지 않은데서 비롯된 말로 ‘너무도 뜻밖인 일이어서 기가 막혀 어쩔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2008학년도부터 변경된 대학입시에서 주요대학들이 ‘통합형 논술’ 반영비율을 높이기로 하면서 갑자기 혼란을 겪고 ‘교사가 논술 지도 능력이 없다’는 등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된 일선 학교의 경우가 바로 그 꼴이다. '논술 대란'에 어처구니 없기로는 학생과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일반계 고등학생의 경우 대부분 아침 6시 반에 등교하여 밤 11시까지 수능과 내신을 위한 공부에 전념한다. 이제는 거기에다 논술 공부까지 해야 함으로써 내신-수능-논술로 이어지는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고통 받게 된 것이다. 논술 수업을 따로 받으려면 밤 12시 넘어 학원엘 가거나 있는 집 자식들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대도시나 서울로 논술 과외를 하러 가야 한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 없는 곳은 일선 학교다. 교육청마다 논술지도를 위하여 급조된 교사 연수나 시범학교 운영 등을 서두르고 있다. 어떤 학교는 교사들에게 단체로 학원 논술 강좌를 수강토록 하는 기현상을 보이는 등 난리법석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뿐더러 대부분 근본적 대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한 상황이어서 학교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물며 제대로 된 논술 교재나 교육 매뉴얼이 없는 등 인프라가 거의 구축돼 있지 않다. 내신, 수능 준비에도 빠듯한 현행 교육과정에다 논술시험을 위한 논리적 사고를 기르기에는 시수나 담당교사 확보가 부족한 형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대학들이 고교에서 다루는 수준 이상으로 논술을 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령 여건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사가 사범대학에서 ‘통합형 논술’에 관련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조차도 올 들어서야 논술교육 현황 연구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논술전형 비율을 높이겠다고 벼르는 서울대조차 사범대생들에게 어떻게 논술 교수법을 가르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대부분 학교의 논술 담당 교사는 자기 수업은 수업대로 하면서 논술을 추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논술 수업이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의 수업시간과 업무량을 조절하지 않고 시험용 논술 수업만 하도록 강요하거나 ‘공교육 논술 무방비’라며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대학에서 창의성과 논리력을 평가한다는 데 굳이 반대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 준비가 덜된 상황에서 좀 늦어지더라도 이에 걸 맞게 교육과정을 보완하고, 교사의 논술 지도 전문성 함양, 그리고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난 뒤에 논술 평가를 확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입시지옥으로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보호하고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겠다는 ‘새 대입제도’가 엉뚱하게도 학생, 학부모, 학교 모두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로 '어처구니' 없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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