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아줌마와 교장선생님

2006.11.08 22:04:00


오늘 이른 아침 둥근달은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수능 1주일을 앞두고 등교하는 3학년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했습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고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듯했습니다.

어느 때도 발견하지 못한 둥근달이었습니다. 하얀 달이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초조를 안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달래주는 듯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에게 큰 안정을 가져다 줄 것 같았습니다. 고3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차분해 보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 겪었던 중3의 과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든 관문입니다. 뚫어야 할 문입니다. 통과해야 할 문입니다. 선택된 자들만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가려고 하는 학생은 많아도 한정되어 있기에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을 통과하려고 막판까지 힘을 쏟습니다. 집중을 합니다. 끈기와 인내로 이겨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들의 학생들이 뿌듯해 보입니다.

함께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힘든 시간입니다만 잘 이겨냅니다. 잘 참아냅니다. 끝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함께 동행합니다. 자기 자녀들은 뒷전입니다. 자기 자녀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돌봅니다. 내 자녀들은 시어머님께, 친정어머님께 맡깁니다. 그리고는 고3학생들에게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이들의 현실을 학부형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합니다. 내가 맡은 학생들이니까 그저 돌봅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학교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교장, 교감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저녁식사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힘써 왔습니다. 지금도 힘쓰고 있습니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그러합니다. 수능이 끝나서도, 아니 졸업을 하고 나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오직 학생들을 사랑하기에, 오직 학생들이 나의 희망이기에, 오직 학생들이 나의 믿음이기에 그러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런지 생각해 봅니다. 저가 할 일이라곤 그저 지나가면서 만나면 웃어주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해주고, 함께 있어주고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비록 저는 크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도 학생들을 보면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학생들을 보면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보다는 오히려 아침에 조용히 맞아주는 둥근달을 보면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구석구석 노란 국화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겨울을 웃어줄 겨울양배추를 보면 신이 날 것입니다.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면서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밤에 경비하는 경비아줌마를 보면서 잘 참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식사 시간에 경비아줌마가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계시는 교장선생님을 보면 더욱 의욕이 생길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경비아저씨 대신 경비아줌가 경비를 합니다. 아마 전국에서 경비아줌마는 우리학교가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여학교에 아줌마가 경비를 서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어머니처럼 지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처럼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처럼 학생들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처럼 무게가 떨어져도 여자가 지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경비를 한다면 아저씨 못지않은 좋은 경비가 될 것입니다. 학생들도 잘 따르리라 봅니다. 동네 주민들도 잘 협조하리라 봅니다. 선생님들도 좋아하리라 봅니다. 빠른 시일 내 경비아줌마의 경비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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