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습니다

2006.11.19 08:52:00

지금은 셋째 일요일 이른 아침입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려고 합니다. 좋은 날씨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보람된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안네마리 노르덴의 ‘잔소리 없는 날’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자녀가 부모로부터 잔소리 없는 날을 허락받고 그날 일어난 일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러합니다.

'이 학생은 잔소리 없는 날 양치질도 하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자두잼을 실컷 먹고, 선생님에게 거짓말 하고 수업 빼먹고, 비싼 물건을 사려고 하는 하고, 거리의 술주정뱅이를 집 안으로 데려오려고 하고 어두운 밤에 공원에서 텐트치고 지내고 부모님 걱정시키는 심각한 일을 하고...'
저는 이 글을 읽고서 학생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데 잔소리 없는 날을 허락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잔소리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낫지만 학생들에게는 잔소리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옳든 옳지 않든 마음대로 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져 기분이 좋아집니다. 학생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고 모험심을 길러주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의 시행착오에서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이점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잔소리 없는 날로 허락할 때 도저히 자녀로서,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짓말을 해서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 학생으로서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물건을 사려고 하는 것, 어두운 밤 공원에서 텐트치고 노는 것,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오려는 것, 어두운 밤거리를 거닐며 범죄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의 해로운 점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에게 잔소리하는 것보다 하지 않은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1년 내내 잔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미 분별력이 있고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잔소리 하지 않아도 걱정될 만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제도 한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요. 잔소리 하지 않으니 근무하기가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자기 할 일 다 하잖아요'하더군요. 선생님들에게는 잔소리 안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다릅니다. 학생들이 잔소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잔소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잔소리 해야 할 때 반드시 잔소리를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잔소리 듣는 것 싫어한다고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간섭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아직 학생들에게는 분별력이 뛰어나지 않아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집니다. 간섭하지 않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간섭하지 않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합니다.

자녀들이 원한다고, 학생들이 원한다고 잔소리가 필요할 때 잔소리하지 않으면 그날부터 거짓이 싹틉니다. 그날부터 방종이 싹틉니다. 그날부터 헛된 꿈을 꿉니다. 그날부터 허황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잔소리 없이 키우면 독립심이 키워지고 모험심이 키워지고 한다고 한다고 풀어줘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간섭받지 않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들을 하루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간섭할 것 간섭해야 합니다. 지적할 것 지적해야 합니다.

위험 속에 빠지기 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생들의 틀 속에서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 자유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의 규칙 속에서 독립심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니다 싶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말 하고 수업 빼먹으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거짓말과 나쁜 행위로 쾌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수업 빼먹고 공원에 가서 빈둥빈둥 놀면 얼마나 자유스럽겠습니까? 그게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는 공원이 자기 집이 되고 공원이 자기 안방이 되고 맙니다. 낮이고 밤이고 공원을 찾으며 고독을 삼키며 어둠 속에서 방황할 것 아닙니까?

수능시험 끝났다고 복장불량 학생과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으면 실내화 신고 체육복 입고 학교에 오지 않겠습니까?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지각까지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시험도 끝났고 내일 모레면 대학갈 나이인데 간섭하지 말고 잔소리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마는 그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안 그래도 고3학생들이 걱정인데 인기를 얻기 위해 잔소리를 멈추면 안 됩니다. 간섭을 그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잔소리가 필요한 학생에게는 잔소리를, 간섭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간섭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점수 따려고 풀어줘서도 안 됩니다. 학교의 틀 속에서, 학교의 규칙 속에서, 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자기의 할 일을 찾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잔소리를 듣고 자랍니다. 학생들은 간섭 속에서 바르게 성장합니다. 하루도 기회를 줘서는 안 됩니다. 어제는 3학년 교실을 돌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맘대로 행동하는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점수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잔소리 안 하는 것보다 잔소리 하는 것이 낫습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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