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이 보내는 침묵의 함성

2007.01.09 20:33:00

새해 첫날 산에 올랐다. 내 딴에 제법 마음먹은 산행이었다. 새해 첫날 누구보다 제일 먼저 해를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한 겨울 산에서 뼛속까지 후벼 파는 바람에도 끄떡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내 삶의 깊은 영혼까지 맑게 씻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새해 첫날 동이 트기 전에 산에서 조용한 가운데 마음을 다독이겠다는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산등성이는 아직도 어둠을 덮고 있는데,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발끝으로 어둠을 차면서 오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혼자만 듣겠다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는데 음악 소리가 밖에 까지 들린다. 정상에 올라와서 휴대 전화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친지에게 중계하는 아주머니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애완견까지 끌고 와서 깊은 산 속이 갑자기 도떼기시장이 되어 버렸다.

참 시끄러운 세상이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니 우리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미국과 아랍 단체는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이에 이라크에서는 연열 사망자가 늘었다. 북한 핵문제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섯 명이 모이는데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아베 총리 등장 그리고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의 모습도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이웃 중국의 동북 공정 정책, 인도의 대지진, 끊이지 않는 테러 등 지구촌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우리 주변도 말이 많았다. 과학자 황우석의 진실 게임, 그리고 그의 추락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싼 갈등, KTX의 여승무원들의 생존권 투쟁, FTA 협정에 따른 손익 논쟁, 노사 간의 대립, 연쇄 살인 사건, 집값 걱정, 신도시 개발, 대추리 마을의 주민들,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 잇단 공직자의 낙마. 이 모두가 한 해 동안 우리를 슬프게 했다.

조용한 날이 하나도 없었다. 텔레비전은 떠드는 사람들에게 아예 확성기를 대주는 것처럼 그들이 한 이야기를 또 다시 안방까지 전달하는데 열을 올렸다. 과거 폭압적인 정권에 눌려 말이 없던 신문은 올해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며 말이 많았다. 인터넷에서도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까지 가세해 정신이 없었다.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사건을 두고 터져 나온 말들이다. 변명과 거짓 그리고 순간을 모면하려는 핑계, 남을 헐뜯는 말들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변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의 실수만 보면 험한 말을 퍼부었고, 실수를 하면 변명이 아닌 사실의 은폐를 위해서 떠들었다. 아니 이제는 없는 일도 꾸며내면서 험담을 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뻔뻔하게 돌아서고 있다.

우리 삶의 모습도 변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이웃과 함께 사는 모습을 그리워하던 삶의 모습은 간 데 없다. 사무실에서 매일 보는 얼굴끼리 이념의 줄다리기를 하고, 술자리에 가서도 정치권이 쏟아낸 말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싸움을 한다. 언제부턴가 평범한 우리의 의식도 진보와 보수의 소리를 녹음해 둔 하나의 마그네틱테이프처럼 변했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잘났다고 떠들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아서인지 말을 못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려는 자신의 주장을 목청껏 높여야 할 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침묵으로 대화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침묵은 복잡한 현실을 한 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침묵과 대화하다보면 성숙한 내면이 만들어진다. 침묵의 숲을 걷다보면 맑은 영혼을 발견하고, 농익은 삶의 진실에 다다른다. 겨울 산에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겨울산은 가혹한 추위에 모든 생명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꽁꽁 언 땅 밑에는 생명들이 새봄의 축제를 위해 호흡 없는 긴 침묵에 잠겨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산 속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어서 추위 속의 산행을 자주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해보니 작년 한해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았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너나할 것 없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며 살았다. 삼갈 때는 삼갈 줄 알아야 하는데 예의 없이 말해버리는 사람들 틈에서 정신적 충격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어디 말뿐이겠는가. 글로 한몫 하는 사람들은 거침없는 필봉을 휘둘러 우리를 어지럽게 했다. 권력 있는 사람들도 시끄러웠지만, 인터넷을 누비는 이름 없는 사람들도 익명이라는 탈을 쓰고 험담과 욕설을 즐겼다.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행동도 따라야 한다.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 상대방에게도 주시 당한다. 반대로 말을 적게 하면서 상대방과 대화하면 내가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읽히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말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대화법이 필요하다.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화법이 필요하다. 오히려 때를 얻은 침묵은 지혜이며, 그것은 어떠한 웅변보다도 낫다고 했다.

말이 많은 것은 결국 욕심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욕심을 좀 내려놓았으면 한다. 말을 참고 있으면, 생각도 좀 훤해질 수 있다. 그때 따끔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까지 있어 그야말로 말이 폭포처럼 쏟아질 것인데, 침묵이 때로는 더 큰 함성으로 들리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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