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19-타즈마할

2007.01.12 22:38:00


2005 1.28 금 맑음

쟌시에서 k.g.m 호텔에서 묵고 새벽 5시 30분쯤 기상하여 역으로 향했다. 한참 걷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오토릭샤가 마침 와서 10루피를 주고 역까지 왔다. 표를 끊었는데 11시 40분 기차가 아닌가. 역 안내실에 가서 10루피를 더 내면 8시 25분 기차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다시 가서 8시 25분 표를 다시 끊고 카스테라 20루피와 커피 5루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기차에 올랐다.

어젯밤부터 다시 읽던 영문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기차에서 다 읽었다.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If Agnes Fleming could have looked down on him from Heaven, she would have been very proud of her son. (만약 아그네스 플레밍이 천국에서 아들을 내려다본다면 그녀는 자기 아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지금 아그라로 가는 기차에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오전 11시. 40분 후에 아그라에 도착 예정이다.

아그라역에 도착하니 타지간지(여행자거리)까지 8km란다. 오토릭샤로 50루피를 주고 가서 샨티 lodge(하숙)에 100루피에 체크인 했다. 오늘 금요일은 타즈마할은 열지 않는다. 타즈마할 뒤로 강뚝을 따라 걸어가며 타즈마할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멋진 건물이다. 여기저기 담장 보수가 한창이다. 강둑을 따라 타즈마할을 지나 걸어가는데 바라나시 버닝가트(화장터)처럼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역시 화장터였다.



30여 곳은 될듯하게 시멘트로 단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화장의식을 행했다. 바라나시 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하는 거 같다. 죽은자에 대한 품위가 지켜지도록 노력하는 거 같다. 빙 둘러 장작을 세워놔서 시체가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바라나시에서는 얼굴과 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여기서는 장작을 세우고 짚으로 둘러싸 보이지 않았다. 바라나시는 맨흙바닥인데 여기는 지붕도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시멘트 단을 만들어 깨끗했다.

죽은이의 조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삼촌이 55세인데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삼촌의 아들은 장가를 갔다고 한다. 죽은 후에 그 재는 어떻게 하는가 궁금했다. 바라나시로 가서 갠지스강에 뿌리는지 알고 싶었지만 영어가 안 통해 알 수가 없었다. 이곳 화장터도 강가에 있었는데 이 강도 성스러운 갠지스강의 한 지류가 아닐가 생각해 보았다.

강을 따라 걷다가 강언덕에 야외 이발소가 있어서 수염만 깍으려다가 비용이 저렴하여 이발까지 했다. 눈썹까지 다듬어주고 머리, 목, 어깨 마사지까지 해주고 얼굴 화장도 두 번씩이나 해주고 머리에 기름도 발라서 빗으로 싹 빗어주는 정성을 보였다. 이발을 하고 나니 금세 기분도 산뜻하고 얼굴도 윤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20루피를 주기로 했는데 팁으로 10루피를 더 주었다. 다시 걸어서 아그라 포트로 향했다. 웅장한 성이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돌로 쌓은 성이였다. 성이라기 보다는 궁궐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성 안쪽으로 수만은 방과 복도와 마당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의 궁전이었다. 과거 이슬람 정권의 막강한 권세를 실감했다. 끝까지 다 보았다. 그 안에 타즈마할을 세운 샤자한이 생을 마감한 건물도 있었다. 입장료는 300루피(8000원). 비싼편이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로 김치볶음밥을 먹었는데 80루피란다. 특별히 맛있게 하는 것인 줄 알고 시켰는데 평범한 김치 볶음밥이다. 나는 충고해 주었다. 모든 한국 관광객은 알 것이다. 80루피가 비싸다는 걸. 이웃 식당에 가보아라. 25루피다. 적절한 가격이 중요하다고 주방장과 매니저에게 설명을 하니 수긍을 하며 가격을 다시 써 붙이겠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나는 곧 떠난다. 앞으로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올 것인데 그들 모두 비싸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서 지금 충고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분명하게 얘기해 주었다.

저녁엔 심심해서 외출했다가 물 한병과 탱고(tango)라는 인도술 한병을 사가지고 와서 지금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오렌지 냄새가 나는 오렌지 술이다. 술맛이 괜찮다. 지금은 밤 10시 40분, 이곳 숙소 이름도 샨티 게스트 하우스(Shanti Guest House) 4호실, 객실 밖에서는 웅성웅성 어수선하다. 옆 건물 이슬람 사원에서는 마이크로 예배를 드리느라고 시끄럽기 한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인도는 어쩌면 편안한 나라인지도 모른다. 기차표를 살 때도 엉성하게 줄을 서 있는데 수시로 새치기로 앞에 와서 표를 끊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나는 안되겠다 싶어서 뒤로 가시오 하고 외쳐봤지만 내 앞의 사람들은 당연한 듯 모르는체 한다. 차선도 있다가 없다가 한다. 일정구간 차선이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 지점에선 차선이 안 보이는 것이다. 기차 역 플래트홈까지 소가 어슬렁거리면 돌아다니는 나라, 시체를 화장하는 성스러운 화장터에 소나 염소가 들어와 관을 감쌌던 꽃을 모두 먹어치우는 나라, 거스름 돈을 주면서 그 자리에서 확인해보라고 하는 한편, 정가표를 지우고 값을 배로 받는 나라, 2000년 전의 모습과 첨단 21세기가 공존하는 나라,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 여관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힌두교의 신이 모셔져 있는 나라,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나라.... 나는 세계속의 힌국을 모르듯, 세계속의 인도를 잘 모른다.



밤 11시 20분 탱고한병을 다 마시고 마시고 약간 취기가 올라 다시 한병을 더 사왔다. 한 달여 여행중에 내가 술을 파는 가게를 본 것은 이곳 아그라에서 처음이다. 초도 한개 더 샀다. 지금도 밖에서는 대형확성기로 예배드리느라고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우리 여행자들이야 이삼일 후면 떠나지만 주민들은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지금 12시 16분. 나는 당근과 바나를 한입씩 베어물며 인도 술 탱고를 조금씩 마시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선 시골학교 운동회 확성기보다도 도 큰 확성기 소리로 무슬림들의 코란 읽는 소리가 요란하다.

혹시 한국이 그동안 세계의 변방이 아니었을까. 한국이 세계의 가장자리 세계의 오지가 아니었을까. 지정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래서 독특한 한국문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도 독특하지 않은가. 인도 사람들은 그들끼리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거리마다 있는 신상에 꽃을 놓고 돈을 놓고 기도를 하며 그들만의 소망, 염원, 갈망을 비는 것이다. 외국인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1.29 토 맑음

어제 마신 술로 인해 늦게 잠을 잔 관계로 아침에 깨어보니 10시 반이다. 11시쯤 계란말이와 수제비로 아침식사를 하고 45루피를 냈다. 김치볶음밥을 80루피를 받는 집은 이 여관박에 없다. 식사를 마치고 곧 타즈마할로 갔다. 어제 문을 닫았다가 오늘 열어서 그런지, 토요일이라 그런지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정사각형에 모서리를 잘라낸 8각형 형태, 동서남북의 모양이 똑같다.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어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있다. 내부는 그냥 두개의 가묘가 있을뿐이다. 진짜 묘는 지하에 있다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아내의 무덤을 이렇게 웅장하게 지은 이슬람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자한의 왕비 뭄타즈마할은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가 38살의 젊은 나이로 1631년에 죽었다. 그리고 30년 쯤 후인 1662년 샤자한도 죽어 이곳에 같이 묻혔다고 한다. 타즈마할 관광을 마치고 나와 작은 타즈마할이라 불리는 제항기르 왕의 장인과 그 장모, 처남, 처제들이 묻혀있는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에도 가보았다. 규모가 좀 작기는 하지만 타즈마할과 모양이 비슷하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에 왔다가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제목도 배우이름도 모르지만 코미디적인 요소와 뮤지컬 적인 요소가 짙은 영화이다. 인도 배우들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특히 여배우들의 미모는 세계 어느 배우들 못지 않게 뛰어나다. 극장 옆에서는 내일 결혼식을 앞두고 또 파티가 벌어졌다. 수백명씩 음식대접을 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극장에서 걸어오는 동안 세 군대서 결혼식 파티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시즌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오늘이 또 토요일이라 결혼식이 더 많은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델리로 떠나자.



2005.1.30 일

지금 델리로 가는 기차에서 일기를 쓴다. 8시 30분에 일어나 세수하고 호텔 체크아웃하고 Agra Cantt역까지 오토릭샤로(50루피)와서 바로 기차표를 끊었다. 9시 20분에 기차역에 나와 9시 30분 기차표를 끊었으니 서둘러 플랫홈3으로 달려가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기차표 요금은 68루피였다. 9시 40분에 출발해서 지금 10시 55분이다. 기차는 중간 기착지에 정차해 있다. 델리역에 도착해서 바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예매해야겠다. 밤 기차는 너무 추으니 아침 기차표를 끊고 낮에 다시 캘커타로 가기로 하자.

2월 2일 캘커타로 돌아가자. 3일 하루 더 캘커타에 머물고 4일 공항으로 나와 귀국비행기를 타자. 델리에서는 부지런히 움직여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자. 오늘 도착하자마자 관광에 나서 내일 모레까지 3일 동안 관광을 마치자. 가서 델리 안내서를 구해야겠다. 1일엔reform(에약확인하는 것)을 잊지 말자. 한 달 여행하는 동안 술마시는 사람들을 못 보았다. 아그라에서 한번 술만을 파는 가게를 보았지만 음식점이나 길거리에서 술을 먹고 있거나 취해 있는 사람은 못 보았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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