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연수기 (5)

2007.01.16 08:53:00

베트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후진국이다. 미국과의 전쟁 후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겪은 나라 아닌가? 남북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후 외국원조의 단절, 낙후성, 미국과 서방의 제재 및 봉쇄 정책, 이웃 강대국과의 관계악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의 침공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나라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 갔을 때 여러 곳에서 후진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이 있는 것처럼 후치민시에는 사이공강이 있었다. 사이공강은 태화강과는 달리 수심이 깊고 넓어 많은 배들을 볼 수 있었으며, 특히 큰 배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사이공강물은 울산의 태화강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태화강물도 오염이 되어 수질이 양호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이공강물은 흙탕물이었고 지류에서는 썩은 물들이 그대로 있어 쳐다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사이공강을 중심으로 한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가장 중요한 물이 이렇게 오염되어 있으니 말이나 되겠나? 아직 물 관리를 할 만한 여유가 없어 보였다.

베트남의 무질서도 도를 넘을 정도였다. 오트바이문화로 시내에는 수십 만대의 오트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는데, 낮과 밤이 따로 없었고 출근길도 따로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오트바이로 가득 찼다. 오트바이만 봐도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다. 오트바이 사람들 중에는 입에 수건 같은 것으로 입을 막고 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공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신호등이 있어도 우리처럼 많이 보이지 않았고 그것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좌회전 신호가 없어 알아서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사고가 날 수 있을 만큼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경찰은 보여도 아무런 통제 능력이 없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한번 상상해 보라. 심지어는 중앙선이 있어도 반대 선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안내원은 한국에서 오토바이를 잘 타는 사람들이 베트남에 와서 오토바이를 타면 사고가 잘 난다고 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에 와서 오트바이를 타려면 너무 좁은 도로에서 그 수많은 오토바이 사이로 사고 나지 않고 다닌다는 게 불가능하고 잘 적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타는 법을 새로 배워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베트남의 오토바이는 소형오토바이라 그런지 백밀러가 없었다. 그리고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도 쓰고 다니지 않았다. 그만큼 안전 불감증이 극도에 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질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교통질서에 대한 교육, 교통법규의 정비 및 시행, 차와 오트바이의 통행로를 별도로 만들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사고도 줄일 수 있고, 마음 놓고 길을 다닐 수도 있고, 안심하고 오트바이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오후에 어느 중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학교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우리처럼 한군데 밀집해서 동네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따라 집이 있고-150km의 도로를 달려 봐도 집은 끊어지지 않았고 집 뒤에는 들판이었다.-학교에서 먼 거리에 집이 있어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2차선 길을 건너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5분 내지 10분 정도는 소요되었다. 도로를 건너는 표지판이 되어 있는데도. 신호등이 없었고 교통경찰이 없는 데다 학교 선생님들도 아예 교통지도에는 관심이 없는 듯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학교 앞에 학생들이 서 있어도 차들과 오토바이들은 막무가내로 무섭게 질주하였다. 그러니 학생들은 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무질서 속에 학생들은 생활하고 있었다.
 
하루는 맹인학교를 방문했는데 학교모습이 꼭 한국의 학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동장은 거의 없었고 22명의 일행을 모시는 장소는 비좁아 긴 탁자에 모두 둘러앉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많을 학교를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는데 대동소이한 것은 운동장은 적고 또 운동장에는 각종 나무와 잔디를 심어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우리도 신설학교를 세울 때 부지가 없어 학교 못 세운다 하지 말고 형편에 맞게 이들처럼 운동장을 적게 해 학교를 짓는 방법도 연구해 봄직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비록 후진국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만 조금만 선진의식을 갖고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깨끗하고 환경이 좋은 나라, 질서정연한 나라, 꿈과 희망이 넘치는 나라가 될 것으로 믿는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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