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2)

2007.01.20 09:38:00

99년 들어와 가장 크게 마음에 어그러진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문직 발령에 관한 것이었다. 97년 말에 전문직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후 98년 3월 1일부터 1년 동안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 파견근무(인턴장학사)를 하고 있을 때 그 때 당시 교육의 수장께서 하루는 저를 불러 99년 3월 1일자로 본청에 장학사로 발령을 내 주겠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씀을 하셔서 저는 그 말씀을 찰떡같이 믿고 기대를 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99년 3월 1일자로 울산에서 가장 가기 싫어하는 울산교육연수원에 교육연구사로 발령이 났으니 기뻐하기는커녕 실망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때 연수원에 와서 마음을 달래며 바다를 친구 삼고, 산과 나무와 자연을 친구 삼고, 책을 친구 삼으며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 3월 어느 날 저녁 백운소설의 작가 이규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백운소설의 작가 이규보 선생님은 “작게는 한 몸의 영화, 출세, 고생, 안락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안위와 난리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어그러지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고 했다. 그러면서 ‘위심시(違心詩)’ 12구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인간의 자질구레한 일 한결같이 못해서/ 툭하면 마음에 어그러져 마땅치 않네./ 젊은 나이 때도 가난하면 아내조차 깔보고./ 늙어도 녹만 두터우면 기생도 따른다./ 대개 놀러 가는 날에는 비가 내리고/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때는 날씨가 화창하다./ 배불러 밥을 물리면 맛있는 고기를 만나고/ 목구멍이 헐어 마실 수 없으면 술이 생긴다/ 고이 간직했던 진귀한 물건을 싼 값에 팔고 나면 시장에 값이 오르고,/오랜 병을 애써 고치고 나면 이웃에 의원이 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맞지 않는 것은 이와 같으니/ 하물며 양주에서 학 타는 일이야 기대하랴?/”

마음에 어그러지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렇게 어그러짐이 저에게는 워낙 크다 보니 그 위심(違心)이 상심(喪心)이라 이규보 선생님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상심(喪心)을 평심(平心)으로 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겠건만 상심병(喪心病)을 애써 고치고 나니 의원이 딸네 방에 있었구나.

세상에 이런 사쾌시(四快詩)가 전한단다.

“큰 가뭄 뒤에 단비 만나는 것./ 타향에서 친구 만나는 일/ 결혼 첫날밤에 화촉 밝히는 일/ 금방(金榜)에 이름이 걸릴 때/”

이 네 가지 일은 분명히 기쁘고 즐거운 일이건만 이규보 선생님은 “가뭄 끝에 비가 오기는 하지만 또 가뭄이 들고, 타향에서 친구 만나면 또 이별하게 되며, 첫날밤에 화촉 밝힌다고 해서 어찌 그들이 생이별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겠으며, 과거에서 합격했다고 해서 어찌 그것이 우환의 시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했으니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야말로 어찌 감탄하지 않으리오.

조금만 빨리 이규보 선생님의 앞을 내다보는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면 자질구레한 일들로 인한 상심(喪心)은 쉽게 치유되었을 것이리라. 아무튼 내 몸에 양약임에 틀림없는 주옥같은 말씀이다. 금방(金榜)에 이름 걸릴 때가 우환의 시작이다. 3월의 인사에 관한 이 모든 것. 다 자질구레한 것 아니냐. 자질구레한 것 맞지 않는 것이 그래 어디 한두 가지냐?

이규보 선생님은 ‘30세가 되도록 한 고을의 자리도 얻지 못하고 외롭고 고생스러운 꼴은 말로 다할 수 없어 이때부터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되면 되는대로 읊조리겠다’고 하였는데 이규보 선생님처럼 시를 읊을 능력이 못돼 저를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보내 주었으니 자연과 더불어 친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규보 선생님이 옛 사람의 뜻을 훔쳐 쓰는 것은 훔치는 것도 나쁜데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는 것을 두고 ‘졸도이금체(拙盜易金體:어설픈 도둑이 쉽사리 잡히는 체)’라 하여 경계하였으니 시구를 훔칠 수는 없고 선생님의 뜻이 내 뜻과 부합되고 선생님의 시구가 마음에 드니 공개적으로 선생님의 시구로 내 현재의 심정을 대신 나타내고 싶구려.

“귀는 귀머거리, 입은 벙어리가 되려고 하고,/ 빈곤한 신세는 세상 물정 어두워/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열 가운데 열덟 아홉/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두서넛도 안 되고./”

참으로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 기생사회의 면모를 새롭게 개혁시킨 금하선생님께서 서러운 한탄과 원망 속에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제자 김자야에게 따끔하고도 준엄한 충고의 말씀

“세상은 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그저 모든 것을 잊어버렸거니 하고, 기왕 몸담은 곳에 출심하여 뜻을 바로 뜻을 바로잡고 굳게 세우면 마침내 성공을 하는 법인 거야!”

이 말씀을 저의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생활하련다. 이 선생님은 금방(金榜)에 이름 걸릴 때 우환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준비의 기간, 단련의 기간이라고 믿고 싶다. 연수원의 발령은 한편으로는 시련과 고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좁고 편협한 저에게 넓은 바다를 주고, 좌절과 실망 속에 있는 저에게 푸른 바다 위에 푸른 하늘을 더하여 주며, 말 많고 뻔뻔스러운 저에게 곧게 자란 소나무와 갈고 닦은 바위를 주어 새롭게 다듬어나가는 연단의 장소가 되게 해 더없이 기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욕심 버리고 싶다. 위세 부리고 싶지 않다. 공사(公私) 구분하고 싶다. 남을 나보다 높게 보고 싶다. 앞서지 않고 뒤서고 싶다. 조용하고 싶다. 정직하고 싶다. 넓고 싶다. 공의를 앞세우고 싶다. 나타내지 않고 숨고 싶다. 이 꿈이 성사되는 날 이곳을 떠나리라.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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