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11)

2007.01.29 08:46:00

연수원에 발령이 났을 때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소 문제였다. 그 때 당시 자녀교육 문제로 세 식구는 마산에서 살고 있었고 나만 혼자서 옛 교육청 뒤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놓고 있었다. 여기에서 출퇴근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가야 하고, 방이 쉽게 나가지도 않을 것 같고, 연수원 안에 숙소가 있어 고민 끝에 방을 그대로 둔 채 연수원에서 숙소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씩 시내 볼 일이 있으면 나가서 거기에서 자고 오곤 했었다.

내가 얻은 방이 얼마나 오래된 집이었던지 집에서 수돗물을 틀면 녹물이 나올 정도였다. 3년이나 그 집에서 녹물을 먹고 살았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참고 살아왔다. 그 녹물로 인해 건강상태가 더 좋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련하기 그지없도록 그 집을 떠날 생각도 안 했고 떠날 줄도 몰랐다. 온 식구들이 울산으로 이사올 때까지 좋든 싫든 그 집에서만 살았다.

마산에서 울산으로 오면서 가장 염려한 것이 환경오염 문제였다. 공기도 좋지 않고 물도 좋지 않고 살 곳이 못 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언제나 적응하는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다 집에서 먹는 물까지 낡은 수도관으로 인해 고통 속에 생활했으니 정말 지옥 같은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기쁨은 찾을 수 있었다. 울산이라는 곳이 그렇게 살기 좋지 않은 것만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 살기가 좋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울산에는 태화강이 있다. 서울에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 강북이 있듯이 울산에도 태화강을 중심으로 강남, 강북이 있다. 지역교육청도 강남교육청, 강북교육청이 있다. 서울에 학군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이 있듯이 울산에도 학군의 1번지라 할 수 있는 옥동이 있다.

인구는 서울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서울보다 지역은 더 넓고 좋다. 공기도 예전 공기가 아니다. 물도 예전 물도 아니다. 태화강의 수질이 너무 좋아 ‘수달’이 발견될 정도라고 한다. 출근길이 강변도로라 강변도로를 따라 태화강을 쳐다보면 물이 너무 맑고 좋다. 새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런 태화강을 따라 출근하는 것도 행복 중의 하나이다. 이제 울산을 떠나기가 싫을 정도이다. 이제 울산을 사랑하게 된다. 나의 교직생활의 마무리를 하게 해줄 울산에 애착을 느끼게 된다. 나의 남은 삶에 윤택을 안겨줄 울산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울산의 교육이 이러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울산교육연수원은 평생 잊지 못할 곳이다. 나를 사람 되게 만든 곳이다. 나를 새롭게 만든 곳이다. 나에게 용기를 준 곳이다. 나에게 교훈을 남겨준 곳이다. 나에게 감성을 키워준 곳이다. 나에게 그리움을 가르쳐 준 곳이다. 나에게 큰 꿈과 비전을 품도록 한 곳이다. 나를 단련시킨 곳이다. 울산교육연수원은 나로 하여금 ‘울산=태화강=생명=기쁨=행복=사랑=정=교육...’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하다. 울산교육연수원은 영원하리라!

연수원 시절 4월 중순쯤 며칠 간 내가 얻은 놓은 자취방에서 방어진의 연수원까지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태화강 경치도 구경할 겸 많은 사람들을 접할 겸, 울산 시내를 구경도 할 겸, 사람들 속에서 삶의 호흡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울산을 사랑할 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울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집에서 6시에 나섰다. 신정지하도에서 아침 6시 15분쯤 방어진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에는 사람들은 주로 ‘현대중공업’ 글자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들처럼 일찍부터 일터에서 피와 땀과 정성을 쏟은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창가로 돌린다.

태화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동녘하늘에서 떠오른 아침 태양에 반사를 입은 태화강은 커다란 기둥을 내면서 환히 비추어 준다. 버스가 빠르게 지나가는 터라 바쁘게 강물을 쳐다본다. 그 빛에 반사된 물결은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고요하고 맑고 고왔다.

그 위에는 많은 새가 둘씩 셋씩 짝을 이루며 강물 위로 날고 있다. 태화강 주변의 울산 시가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도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둘기가 내 눈 속에 들어 왔는데 자세히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라 강 주변에 수백 마리가 앉아 모이를 쪼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버스가 지나가는데 강물 위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배가 물위에 떠 있었고 양쪽에 태화강을 수놓는 봄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젊은 분들의 테니스 연습하는 모습이나, 연세 많으신 분들의 골프 치는 모습, 혼자서 열심히 강물과 함께 달리는 모습, 개와 친구가 되어 강줄기를 따라 걷는 모습, 무언가 신중히 생각하면서 걷는 모습...등 이 모든 아름다운 모습들은 아침 태양만큼이나 밝게 빛났으며 그 광경들은 태화강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머리 위로 따라오는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달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울기등대 입구에서 걸어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오는 것도 낭만이리라. 2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현대중공업이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오면 한 가운데 작고 아담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돌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는 울기공원으로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물주의 선물이리라!

내가 근무하는 연수원 입구에 들어서면 수십 그루의 소나무들이 줄지어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양쪽에 서서 정중히 인사하며, 소나무 숲 사이로 아련히 비쳐오는 아침햇살은 푸른 바다의 기운을 담아 내 가슴속에 와 닿는다.  아침마다 이런 인사를 받으며 아침햇살을 안으면서 출근하는 분이 얼마나 되랴! 

조금만 더 들어오면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나무 사이에서 즐겁게 노래하며 환영한다. 제각기 환영하느라 박자가 다 다르고 음정도 다 다르다. 멀리서 날라 오는 솔잎 타는 냄새는 감기로 시달린 코에 닿아 시원하게 해준다. 몸 전체를 붉게 물들인 박테기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랏빛 옷 입은 라일락도 웃어준다. 동백꽃이 새색시 얼굴보다 더 얼굴을 붉히며 나를 쳐다본다. 얼마 남지 않은 벚꽃들도 내년을 기약하면서 인사에 동참한다. 나도 내가 머무는 숙소 앞마당에서 한참 동안 발길을 멈추며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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