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22)

2007.02.11 09:46:00

연수원 숙소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 새소리를 항상 듣게 된다. 생기 있는 봄이 다가오면 새벽부터 들려오는 게 새소리이다. 그러니 자동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일어나면 세상의 잡다한 것 보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면 먼저 마음의 문을 연다. 숙소에 있는 라벤다를 보게 된다. 한참 동안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커텐을 연다. 창문을 연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다. 새소리는 여러 가지로 들린다. 특히 미끄러지는 연음과 끊어지는 절음도 들린다. 옛날 유명한 작곡가들이 새소리를 먼저 연구했음직하다. 유명한 작곡자들이 미끄러지듯이 이어지는 음을 연결음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음의 강조를 위해 스타카토로 끊어 강조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오늘 아침에 들은 새소리와 다를 바 하나도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은 자연과 더불어 친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작곡자들은 분명 깊은 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내면서 새소리를 많이 접했으리라. 거기에서 악상을 얻어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내었으리라. 그렇지 않고는 맑고 고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책도 매일 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비가 온다든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든지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든지 하여 쉴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열흘이 넘게 산책을 못하다가 산책길에 나서면 또 새로워진다. 언제나 새로움을 더해주는 울기공원, 넓고 푸른 동해바다, 안정되게 자리를 지키는 대왕암 이들을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왕암 입구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외로이 서 있다. 혹한 폭풍우에 시달린 듯 상처를 많이 입은 채 서 있다. 대왕암 입구에는 고래의 턱뼈 둘이 세워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고래의 턱뼈가 타원형을 그리고 있다. 높이 두 길이나 넘어 보인다. 방어진에는 고래가 많이 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웅장한 자태는 광활한 대해(大海)에서 활기차게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고래의 기상을 이어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다리를 건너면서 대왕암을 보면 얼마나 많은 세월 속에 시달렸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왕암은 세 개의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위마다 균열이 심하게 나 있어 방금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삼풍백화점이, 성수대교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구석구석 벌겋게 피멍인 들어 있고 물에 접한 바위 밑은 검게 멍이 들어 있었다. 살아있는 나무라고 50~60㎝ 정도의 작은 소나무들이 바위에 납작 붙어 있고, 난(蘭) 종류의 이름 모를 풀잎 끝이 거의 마른 채 바위틈에 자라고 있다. 절벽 바위에 자그만 새가 붙어 있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다.

바위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아찔아찔하다.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바위군(群), 떨어져 죽을 것 같은 자그만 두서너 마리 새들, 파도에 휩싸여 죽을 것 같은 강태공(姜太公), 바위에 몸을 바짝 붙이고 있는 작은 소나무들, 바위틈에 딱 붙어있는 난(蘭)종류의 풀잎. 우리들은 항상 아찔아찔한 위험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죽지 않고 의지해서 잘 살고 있다. 용케도 잘 산다. 너무 겁낼 필요 없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 버티고 있고 견디고 있지 않은가? 흔들림이 없는 자세 본받고 싶다.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 아름답다.

오늘 보는 바다는 호수 같은 바다다. 그 동안 잔잔한 호수와 같은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때가 되니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동해바다는 안개 덮인 햇살로 인해 은빛 찬란하고 대왕암 맞은 바다는 그늘에 가려 검은 무늬로 수놓는다. 그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바다는 이 날을 기다린 듯 유유히 떠 있고, 바닷물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온화한 바다다. 바다의 본래의 마음을 읽는 듯하다. 그러한 아름다운 마음이 내 마음이었으면...

학생들의 마지막 아침 훈련 코스인 대왕암에 이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그들의 다짐은 무엇일까? 그들의 꿈과 이상은 무엇일까?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어떻게 지혜롭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까? 푸른 바다를 보면서, 대왕암을 보면서, 푸른 하늘을 보면서, 푸른 소나무를 보면서 아마 큰 꿈과 비전을 품고 다짐, 다짐하며 연수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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