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24)

2007.02.13 08:54:00

연수원 숙소 생활에서 나에게 관심거리가 하나 생겼다. 정성을 쏟을 만하다. 마음을 집중시킬 만하다. 객지생활에 외로움을 달래주기에 안성맞춤이다. 99년 5월 10일 함께 근무했던 행정실 직원 한 분이 선물로 준 ‘라벤더’이다. 지금까지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그만 화분에 심겨져 있는 라벤더에는 관심이 많이 갔다. 사랑을 하게 된다. 정을 주게 된다.

‘라벤더’는 햇빛을 잘 받는 남향 모래땅에 비옥하지 않는 알칼리성 땅에 잘 자라는 다년생이다. 색깔은 연두색 보단 진하고 녹색보다 약간 연하다고 할까? 내 숙소에 있는 ‘라벤더’는 뿌리가 넷이고 한 뿌리에 서너 줄기가 나 있고, 줄기마다 양 톱니처럼 생긴 잎이 여남은 개 나 있고, 귀엽게 생긴 새끼 잎이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어린 잎 줄기 끝은 고기요리, 찌개, 소스에 쓰이며 허브차, 방향제, 정유는 화장품, 향유, 비누, 향수, 목욕제, 포푸리로 옷장, 방안에 두면 곰팡이가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 좋은 ‘라벤더’를 아리따운 이로부터 선물로 받았으니 얼마나 좋으랴?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 손에 든 식물을 제대로 살려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연과 친해진지 두 달이 지났고 식물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그 때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지 몰라 내 나름대로 물을 주기도 한다. 눈길도 주며 사랑도 주고 정도 준다. 약한 모습이 내 모습 같아 더욱 마음이 끌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를 들으며 창문을 열기 전 라벤더를 한참 쳐다본다. 이 정도 관심을 갖는다는 건 나에겐 큰 변화다. 정을 준 만큼 자라는 것 같다. 그 때 당시 마산 집에 가면 관심과 정성을 쏟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고목에다 붙여놓은 난(蘭)이다. 이건 큰형님으로부터 받은 건데 형님께서 취미로 고목에다 난(蘭)을 붙여 많이 키우고 있었다.

이 난(蘭)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하루에 세 번 물을 주어야 산다’고 하셨다.. 평소에는 아내가 물을 주지만 주말에 집에 가면 내가 물을 준다. 대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있다. 싱싱하게 많이 자랐다. 관심과 정성이 담긴 만큼 생명도 연장되고 성장함을 볼 수 있다. 집에 가면 ‘고목(枯木)에 붙은 난(蘭)’, 연수원에 오면 ‘라벤더’ 이 둘은 나의 지대한 관심거리다. 사랑의 대상이다. 관심과 정의 대상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소리가 들린다. 커텐을 열기 전 라벤더를 본다. 어제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다. 사랑을 준 탓이리라. 물을 준다. 이런 날이 계속 되지만 항상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칠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권태가 온다. 하루는 산책을 하러 정원을 나서는데 권태(倦怠)라는 말이 생각났다. 연수원에 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태(倦怠)가 왔다. 숨길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권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2%만 일하고 98%는 놀고먹는 오토메이션 시대가 오면 권태 지옥에 빠진다고 하는데 일을 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함일까? 욕심이 많아서일까? 반복되는 일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탓일까? 절망에 빠져서 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버나드 쇼는 “내게 두 가지 절망이 있다. 하나는 무슨 일들이 마음대로 안 되는 절망, 둘째는 마음대로 된 이후에 오는 절망이다”라고 하는데 무슨 일들이 마음대로 안 되는 절망 때문일까?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일까? 엊그제만 해도 건강하게 생활하던 사촌누이께서 하루아침에 유명(幽明)을 달리 하니 그럴까? 치통(齒痛) 때문일까? 아니면 알게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마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더욱 나를 무료하게 만들고 권태롭게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권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태가 계속되면 생활의 리듬을 깰 뿐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권태는 나의 적이다. 권태는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장애물이다. 권태는 나를 부정적인 삶으로 몰고 간다. 권태는 나를 패배자로 만든다. 권태는 나를 죽음으로 몬다.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다. 혼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련다.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련다. 욕심도 버리고 마음도 비우고 계속 연단하고 싶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까지.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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