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27)

2007.02.16 14:08:00

오늘은 종업식을 하는 날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았다. 선생님들이 지난 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자기 맡은 분야에 책임을 다해 주셨다. 그러하기에 좋은 결실도 보게 되었다. 서울대 3명을 비롯하여 서울 지역에만 86명이나 합격하였고 모두 461명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들의 노고가 결실로 다가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 우리학교 선생님 중 인사원칙에 따라 만기가 되어 30명 가까운 선생님께서 이동하게 되셨다. 한 분 선생님께서 건강상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면면이 살펴 볼 때에 한 분도 보내기가 아까운 성실하고 유능하신 선생님들이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본을 보여 주신 분들이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우리학교에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한다. 선생님께서 몸은 떠나 울산여고에 없지만 선생님들께서 남기신  땀과 수고와 인내와 정성과 사랑과 아름다운 발자취와 그윽한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있어 온 교정을 윤택하게 하며 학생들을 살찌게 할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앞앞이 인사를 올리지 못하지만 이 글에서 간단하게나마 용서와 감사의 인사말씀을 올린다. 함께 근무한 여러 선생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시는 선생님들에게 나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로 인해 상처 받고 마음을 아파했거나 서운했던 선생님이 계시면 다 용서해 주기를 빌 뿐이다. 좋지 않은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언제나 좋은 것만 기억에 남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떠나시는 선생님들께서 언제나 건강하고 가정에 윤택하고 기름진 복이 철철 흘러 넘쳤으면 하고 기도한다. 다시 만남이 있기를 기대도 해본다.

우리학교를 떠나시는 선생님께서는 꼭 울기공원을 자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바람을 가지면서 연수원의 시절의 울기공원 산책로를 떠올린다. 울기공원의 산책로는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좋다. 따분한 마음을 풀어주고 하루 준비를 하게하며 새아침을 열어준다. 아침 숙소 정원을 나오면 각종 작고 아름다운 새들이 쌍쌍이 상공을 나르고 재주를 부리고 노래를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노래하는 새들 위로 티 없이 맑고 고운 하늘이 보이고 신선한 공기가 코를 스친다. 울산이 낳은 울기공원 산책로는 항상 산책객들로 붐빈다. 줄지어 행군하는 경찰아저씨들도 눈에 띄기도 한다. 아침 햇살을 안고 걷는 날은 항상 행복하다. 삶의 꿈과 희망을 갖다 주기에 그렇다.

각종 꽃들이 필 때는 벚꽃, 목련꽃, 개나리꽃,..등 여러 꽃들이 빛들을 발한다. 서서히 자취를 감출 때는 막판까지 몇 그루만 꽃을 피우려고 애를 쓰지만 전체의 판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벚꽃 그 자체는 아름답게 보였지만 전체가 신록으로 물들고 있는 때면 늦게 핀 벚꽃을 보면 장소와 시기를 놓친 듯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바람에 흩날리는 마지막 벚꽃들마저 때가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듯 서서히 사라진다.

사람도 장소와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때를 놓치면 장소가 아니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빛을 발할 수 없다. 시기와 장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일할 시기, 일할 장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벚꽃이 질 무렵의 숲 속은 가히 아름답지 못하다. 화사하게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던 그 순간이 아쉬운 듯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질질 끄는 모습이 추하기만 하다. 화끈하게 피어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질 때에도 과거의 화려했던 그 모습 그 추억 다 버리고 새롭게 변하면 더 좋을 텐데.

벚꽃이 목련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목련은 필 때에도 화끈하게 피고 질 때에도 화끈하게 지며, 오히려 새 모습으로 단장하는 목련이 더 좋게 느껴진다. 싱싱하고 연푸른 잎을 가지가지에 내니 얼마나 아름답고 좋으냐? 구질구질하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만 돌아보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뭇잎은 생기마저 잃고 뒷정리를 잘 못하는 것이 꼭 나를 비쳐주는 것 같다. 벚꽃나무처럼 과거에 미련 갖고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내가 부끄럽다. 목련처럼 되고 싶다.

산책길을 걸으며 눈에 크게 띄는 건 은행나무 잎의 귀여운 모습이다. 어린아이의 손처럼 보드랍고 연하고 싱싱하다. 산책로를 압도할 만큼 강하게 다가온다. 은행나무 잎의 발견은 큰 수확이 된다. 가까이서 보면 연한 가지 수십 개가 가지가지마다 콩알 만한 연둣빛 잎망울이 풍성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 속에서 생명이 살아 움직임을 보면서 다시 새 힘을 얻는다.

수많은 잡초들도 푸르고 싱싱하기 더하여 숲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름 있는 나무와 풀만 자리하고 이름 없는 나무와 풀이 없다면 그 숲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오히려 이름 없는 나무들과 풀이 더 푸르고 싱싱하여 전체 판을 푸르게 만드니 비록 주목받지 못하고 빛이 없어도 없어서는 안 될 꼭 있어야 할 존재로구나!

나의 존재가 비록 보잘 것 없고 눈에 뜨일 만한 뛰어나 존재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의 나의 위치에서 꼭 있어야 할 존재, 꼭 필요한 존재로서의 삶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야 전체의 판을 조화롭게 이룰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으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게 된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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