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의 추억 (30)

2007.02.21 09:01:00

이번 설날에 큰집에는 특이한 손님이 왔다. 5남매의 딸린 식구만 해도 많지만 ‘앤드루’라는 캐나다인과 양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두 명의 6학년 초등학생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두 번째 만나는 구면이었지만 나는 처음이었기에 ‘앤드루’라는 캐나다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앤드루’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 결혼을 했느냐? 무슨 목적으로 한국에 나왔느냐? 등등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형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두 애를 가리키면서 이런 애와 같은 애들이 양육원에서 일정 나이가 되면 독립하기 위해 나가야 하는데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애들이 많은데 그들이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 주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하루 지나고 마산에서 울산으로 돌아오면서 딸로부터 생각 없이 말과 행동을 한다고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 없이 ‘앤드루’에게 던진 질문과 애를 가리키면서 ‘이런 애’라고 한 것을 두고 딸은 자기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나이가 몇이냐? 결혼했느냐? 라고 묻는 것은 실례라고 했다. 또 두 애를 가리키면서 ‘이런 애’라고 한 것은 그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예사로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언행을 했을 뿐인데 그게 아니었다.

아하,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무례한 언행을 했구나~ 정신 차려야겠구나. 말과 혀를 다스려야겠구나. 생각 없이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되겠구나. 말하기 전에 30초 먼저 생각을 하고 난 뒤 말과 행동을 해야겠구나. 특히 실례가 되는 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은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신중하지 못한 나를 깨우쳐주는 딸이 고마웠다.

연수원에 있을 때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그날 ‘스승의 날 휴교’라는 글을 읽었다. 옛날 서당에서 책 한 권 떼고 나면 스승의 친필이 든 봉투 하나를 내리는데 그 제자에게 알맞은 좌우명적인 한자(漢字)가 들어있는 봉투를 받는다고 했다. 머리가 잘돌아 일을 설치는 성격이면 어리석을 ‘우(愚)’자를, 독불로 남과 어울리지 못하면 합할 ‘협(協)’, 입이나 행동이 가벼우면 삼갈 ‘신(愼)’자가 든 선물 봉투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만일 서당에서 공부를 했더라면 입이나 행동이 가벼워 삼갈 ‘신(愼)’자가 든 선물 봉투를 받았을 것이다. 설날 연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에게 귀한 선물봉투를 받은 셈이다. 나는 얼마 안 되는 세뱃돈이 고작이지만 딸은 나에게 아주 값비싼 선물을 하였다.

나의 성격을 되돌아본다. 나는 입이나 행동을 가볍게 하여 낭패를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기차 통학을 하면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학생에게 가볍게 말을 던져 얻어터지는가 하면, 회식시간 윗사람이 서 있는데 무심코 앉아 있다가 무안을 당하는 일, 휴게실에서 아는 사람 차 대접하면서 윗사람을 챙기지 않다가 윗사람을 창피하게 만든 일....

지난날에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을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마음이 어그러졌다고 하여 상사에게 불손하게 대들던 일, 집을 사고파는 일에 신중하지 못해 손해를 봤던 일, 낚시 기구, 등산화, 등산복 기타 등등 많은 물건을 사는 일에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덜렁 사놓고는 두고두고 후회한 적도 많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딸이 지적한 것처럼 가벼운 입이나 행동이 좀 무거웠으면 한다. 옛 스승의 봉투선물 삼갈 ‘신(愼)’자를 가슴 속에 새겨 두어 조금 신중하게 행동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딸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말아야겠다. ‘이제 많이 달라졌어. 말과 행동이 많이 신중해 졌어’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 동안 너무 언행에 있어 조심성이 없었기에 조금 변화고 싶다. 삼갈 ‘신(愼)’, 삼갈 ‘신(愼)’ 삼갈 ‘신(愼)’, 삼갈 ‘신(愼)’...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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