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雪山

2007.02.22 07:33:00

점심식사를 마치면 급식실 옆으로 나있는 소로(小路)를 따라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을 거니는 맛이 일품이었다. 제 아무리 속 끓이는 일이 있어도 숲이 뿜어내는 향기로운 평화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속의 격랑도 슬그머니 가라앉게 마련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교직 생활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던 시절이라, 점심시간이면 가끔 마음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본관 뒤편에 있는 숲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가난한 찬이지만 풍성하게 나누던 그 인정이 아직도 새삼스런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모성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양지바른 산비탈에 둥지를 틀었던 학교도 서서히 그렇지만 아주 거칠게 몰려오는 문명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석유화학단지가 속속 입주하면서 학교 오른편에도 대규모 사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바람이 불면 도란도란 속삭이던 대나무 군락도 이때 사라졌다.

본관 바로 뒤편부터 이어지던 산등성이도 도서관, 체육관, 기숙사 등 각종 교육시절이 들어서며 산허리가 잘려 나갔다. 이제 학교 왼편에 위치한 숲만이 유일하게 남아 교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절마다 색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숲은 여전히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남은 숲으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학교는 이제 콘크리트 숲에 갇히는 신세가 될 처지였다. 소문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각종 중장비를 앞세워 몰려든 인부들은 족히 수 십, 수 백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잘라내고 뿌리까지 파헤쳤다. 대를 이어 숲을 지켜 왔을 몇 채의 집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시의 기억은 지금도 싯구로 남아있다.

『(전략) 여름이 가고/가을의 초입으로 들어설 무렵/ 중무장한 인부들이 땅거미처럼 몰려왔다//곧이어/거대한 기계들을 앞세워/아름드리 나무를 자르고 벽을 무너뜨렸다//집을 해체하기까지는/채 한 나절도 걸리지 않았고/마음속 그림은 먼지속으로 파묻혔다(후략)』(최진규 시집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에서)

아파트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공사장 출입구에 커다란 홍보용 현수막이 내걸렸다. 「‘명문 학교’ 옆에 자리한 최고의 ‘명당 자리’」라는 문구가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태 동안 계속된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자 숲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대신하게 되었다. 아파트 완공을 손꼽아 기다렸을 주민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학교는 불야성을 이룬 아파트 덕분(?)에 잠못드는 밤을 보내게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을 보며 겨울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던 낭만은 이제 추억의 뒤안길로 남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회색 콘크리트 숲을 보며 자랄 아이들이다. 그 안타까운 심정을 싯구에 담아두기로 했다.

『철따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그것도 모자라 향기로운 바람과/이름모를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언제나 든든했던 그 곳에 (중략) 해마다 이맘때면/가지마다 하얀 눈을 이고/세상의 근심을 덜어주던 그 순백의 넉넉함은/이제 매서운 겨울바람을 타고/마음 시린 그리움으로 남았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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