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책이 나왔다. <흰 뱀을 찾아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남상순의 <나는 아버지의 친척>이란 소설이다. 제목이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친척’이다. 아버지와 딸이 친척지간이라니. 독자는 제목을 통해 한번 쯤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런 제목의 글을 썼을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미용이게 어느 날 아버지란 사람이 찾아와 같이 살자고 한다. 미용인 고 1. 그동안 미용인 아버지란 사람을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란 찾아와 함께 살자며 외삼촌댁에서 지내온 자신을 데리러 온다.
미용인 아버지를 만나기 전,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그리움을 표출하거나 미워하는 감정들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를 어느 날 만났을 때의 당혹감이란 낯선 곳에 서있는 그런 감정이었을 게다.
그러나 미용인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미용이에게 외가댁은 하나의 지옥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에서라도 다시 볼까봐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낯선 차에 올라탄다. 아버지의 차에 타면서 미용인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자식과 아버지라는 관계가 이렇게 대단한 것일까. 처음 올라탄 차인데도 마음이 제법 편안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얼핏 맡은 허브향도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첫 감정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다 병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외삼촌댁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소리만 들었던 미용이에게 혈육의 긍정적인 어떤 느낌은 가족이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생각이다.
차를 타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중에 아버지는 말한다. “혹시 아빠한테 가족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니?” 하고. 가족이란 것에 대해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는 미용인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 가족들과 인사를 한다. 아버지의 친딸이 아닌 아버지의 친척으로서.
아버지에겐 이미 아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의 친 아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의 친아들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과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가족이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이해와 사랑으로 늘 살아간다. 가족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것에 대해 처음 낯설어하던 미용이도 점차 익숙해져 가지만 마음을 쉽게 열질 못한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가고 있는 준석이는 미용이와 같은 고 1이다. 둘은 남매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 가족이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어 원만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행복하게 살아가던 가족에게 낯선 아버지의 딸이 나타난다면 심한 갈등과 분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준석이나 아버지와 살고 있는 어머닌 조용히 미용일 받아드린다. 그리고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미용이와 함께 하며 마음을 열어간다.
다만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갈등관계가 설정되어 있다면 준석과 미용이다. 그러나 그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 드러날 뿐이다. 친 아들이 아닌 준석이가 친아들이 되어 있고, 친딸인 자신은 아버지의 친척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불만이 하나의 갈등으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미용인 친구를 사귀듯이 준석이에게 다가간다. 때론 질투하며 준석이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자신이 친자식이 아님을 밝히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들어버린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점차 변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지고 있다. 어쩌면 준석이를 질투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곳으로 온 지 얼마나 된다고. 내 마음이 용에게 나를 제물로 바치려고 비장한 각오를 하던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아버지를 비웃고 미워하면서 살게 될 줄 알았다. 그게 나다운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준석이의 관계는 바위 같은 관계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부자지간은 아니지만 두 사람에겐 바위보다 진한 부자지간의 정과 믿음과 사랑이 있다. 준석이가 다른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날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하지만 아들을 꼬옥 가슴에 안아준다. 준석이 또한 그런 아버지 품에 안기며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흠뻑 들어 마신다. 미용인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질투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석이가 학교에서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발생한다. 전교 1등인 준석이의 이런 행동은 미용이에게 충격을 준다. 자신의 압박에 준석이가 그런 행동을 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헌데 안절부절 못하던 미용이에게 문자가 온다. 준석이로부터다.
“나야 준석이. 수술했다는 말 듣고 많이 놀랐지?”
그리고 두 사람은 문자로 대화를 나눈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대화에 미용은 뭉클한 아픔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낯설기만 한 통증의 경험은 쓰리면서도 달콤했다.”
남매도 아닌 남도 아닌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통해서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작가의 말처럼 가족이 친구처럼 변하는 순간이다.
가족 같은 친구, 친구 같은 가족. 이 말 속엔 이해와 사랑과 믿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족이건 친구이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혈연관계라 할 지라도 그 의미는 퇴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상순의 <나는 아버지의 친척>이라는 소설은 가족의 의미를 오늘 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날의 가족이란 구성원은 단순한 혈연관계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