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택제와 수요자 중심 교육

2007.03.08 09:09:00

서울의 한 고교가 올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생이 직접 원하는 담임을 선택하는 ‘담임 선택제’를 실시키로 했다는 보도다. 학교 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급 담임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올해 신입생에 한해 전국 최초로 담임 선택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학교 환경의 인식과 제도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담임 선택제는 왜 하는지 그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학교 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급 담임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먼저 학교 측은 수요자 중심 교육을 잘못 이해한 듯싶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란 학습 수행 과정에 있어서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량을 제시하거나, 수요자의 학습 환경을 배려하는 것이다. 피교육자가 담임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수요자 중심 교육과 관련이 없다.

보도에 의하면 담임 선택은 1학년을 상대로 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담임을 맡을 교사 명단과 함께 예비 담임교사들의 사진ㆍ과목ㆍ학급운영 방침 등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면 학생은 인터넷을 통해 담임을 선택했나보다.

학교 실정도 모르는 신입생이 몇 줄의 학급 운영 방침을 보고 선생님을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담임을 선택하는 이유가 혹 질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더욱 잘못된 제도이다. 선생님을 만나는데 사진과 몇 줄의 이력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담임 선택제가 최선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수요자가 선택할 담임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때 가서 수요자가 구미에도 맞지 않는데, 남아 있는 물건 고르듯 선택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담임이 여러 명이어서 취(取)하고 사(捨)하는 것이 있다면 선택의 의미가 있지만, 한정된 인원 수 내에서 고르라는 것은 선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최근 사회는 시장 경제 원리가 팽배해지는데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학교도 신속한 경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성에 취해 있다. 다시 말해서 담임 선택제는 조급성이 빚어낸 잘못된 제도이다. 담임 선택제는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다. 이는 학교 문화를 퇴보시키는 일이고, 학교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다.

담임 선택제도 그렇지만 지난 번 초등학교 마빡이 입학식도 학교가 잘못된 사회적 경향에 편승을 한 예이다. 입학식에 선생님들이 어린 아이들을 위해 마빡이 입학식을 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묻고 싶다. 텔레비전의 건전하지 못한 프로그램 내용을 선생님들이 따라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입학식에서 재연을 했다니,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시대의 변화를 이유로 무턱대고 오랜 전통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는 학교를 학교답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교육은 경제 원리와 달라서 의도적이고 때로는 강제적인 성격이 많다. 수요자를 핑계로 교육 외적인 활동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행위는 교육의 질적 하락을 낳는다. 아니 철학이 부재한 이벤트 성격의 교육활동은 결국 학교의 부정적인 모습만 키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학교 문화 창조이다. 만남을 통해서 교감을 나누는 것은 인간만이 누리는 고차원적인 문화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서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선생님과의 만남은 평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나의 영혼을 빛나게 하는 선생님과 만남. 그것은 필요에 의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만나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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