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내리는 날 '학교'를 생각하다

2007.03.09 10:00:00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때가 있다. 3월 8일 오후 1시 무렵 밖에는 때 아닌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나이가 먹었다는 것인가. 때 아닌 함박눈 때문인가. 눈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은 저절로 옛날을 향하여 달음질친다. 코흘리개 유년의 소꿉놀이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고 들길 산길 쏘다니며 원시의 아이들처럼 자연 속에 묻혀 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은 ‘학교와 나’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학교와 나’라고 했지만 어찌 나에 국한된 얘기이기만 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학교에 얽힌 많은 추억과 사연을 안고 세상을 살고 있다. 학창의 그 빛바랜 추억 속엔 엄청난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어서 그 에너지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공급되고 있다. 학창시절에 맺어진 우정, 그 시절에 싹텄던 사랑, 그 시절 온갖 천태만상의 체험들이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화석연료처럼 매장되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그 연료를 공급 받아 세상을 사는 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 시절에 배웠던 지식과 도덕, 그 시절에 단련했던 강건한 체력은 일생동안 우리에게 무한한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동창회를 보라. 초등학교 동창회, 중학교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 대학 동창회까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모임 가운데 분명 각종 학교 동창회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가들이 이 동창회에 구미가 당겨 자꾸 그 언저리를 기웃대는 것도 그 영향력 때문인 것이다.

동창회에 적을 두고 우리 모두는 그 힘을 과시하고도 싶고 아름다운 추억에 젖거나 우정을 확인하고도 싶은 것이다. 성공한 동창이 있을라치면 세상에 자랑하고 싶고, 고달픔과 외로움이 있을 때는 동창회에 의지하여 해소하고도 싶은 것이다.

우리는 칠 팔세 무렵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와 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학교생활과 더불어 온갖 체험을 하게 된다. 즐겁고 슬프고 괴롭고 힘든 모든 체험이 망라될 것이다. 그 체험은 그대로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나라는 존재의 골격이 되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성공한 동창이나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나 다 같이 같은 동창회에 적을 두고 회비를 낸다. 가끔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는 사회적 신분도 잠시 잊고 다시 그 옛날의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창들은 낱낱이 그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개성의 섬세한 부분까지도 서로 다 알고 그 골목, 그 운동장, 그 사건에 대한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 선생님, 그 여행지, 그리고 한 여학생에 대한 기억조차도 우리는 공동의 자산처럼 가지고 있다. 포도주와 우정은 오래 될수록 보배롭다 했던가.

‘나와 학교’를 얘기하려다 동창회와 우정으로 비화했나보다. 학교를 얘기하려 했으되 학교의 기능을 논하거나 교육의 사명을 논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육학자의 몫이다. 삼십년 가까이 무명의 교사로 학교에 근무해 오면서 때아니게 내리는 봄눈을 바라보며 갑자기 떠오르는 다분히 감상적인 생각을 적어보려 했을 뿐이다.

여덟 살에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 지금 오십 후반에 이를 때까지 나는 군복무 기간 3년과 제약회사에 다녔던 몇 개월을 빼고는 한 번도 학교와 멀어진 적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군대에서 조차도 나는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것은 내가 이십팔 주 동안 육군 제1하사관 학교에서 교육훈련을 받아 하사 계급장을 달고는 졸업 후엔 줄곧 육군 제 3하사관 학교에서 제대할 때까지 복무했기 때문이다. 군의 학교도 학교일 것이 아닌가. 그러니 교직에 오기 전 제약회사 몇 개월 제외하면 계속 학교와 함께 내 생애를 보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학교가 좋아서 혹은 교육이 천부적 자질이어서 학교와 연을 맺어 살아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학교에 대한 고운 추억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담임선생님이 미워서 날마다 전학 갈 궁리에 골몰하던 때도 있었는가 하면 특정 과목에 성적이 오르지 않아 절망적인 생각을 밥 먹듯이 한 적도 있었다. 친구와의 갈등으로 고민한 적도 있고 선생님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조차도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한낱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에 다름 아니다. 그 모든 체험이 인격의 바탕이 되어 내 삶의 방향에 좋은 지침, 좋은 교훈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혹자는 명문학교로만 일관하여 화려한 동창회를 기반으로 상류사회로만 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저 산골 오지 마을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여 그 초등학교 동창회를 유일한 기쁨이요 생활의 기반으로 하여 평생을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편견이 있을 수는 없다. 각자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각자의 행복은 또 있게 마련 아닌가.

쏟아지던 함박눈도 이제는 그치고 희끗희끗 거리를 덮었던 눈도 어느새 다 녹고 말았다. 봄눈 녹듯 한다는 말이 이런 것에도 해당되는 것일까. 꽃샘추위에 한바탕 눈이 쏟아진다 한들 봄은 이미 우리 주변에 당도해 있는데 그 눈송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금세 녹아서 저 돋아나는 새싹들의 곁으로 스며들어 그 뿌리를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다. 그리고 저 돋아나는 새싹이며 피어나는 꽃들로 하여 세상은 또 온통 꿈과 희망으로 차오를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거대한 학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커다란 학교에서 일생동안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배우다가 졸업을 하듯이 세상을 또 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교직에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직에 있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일평생 학교와 무관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동창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동창 부모님의 부음에 달려가 조문을 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일상사의 하나가 아닌가.

어디 이 것 뿐이겠는가.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대학을 마칠 때까지, 아니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성장하여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다니는 과정을 일평생 지켜보며 끊임없이 학교와 연을 맺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나도 그렇거니와 사람들이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만 학교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 피하고 싶고 화제를 바꾸고 싶고 거론하고 싶지 않은 것이 학교일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에 있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상처가 되어 되살아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상처마저도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성장의 바탕이 된 그 배움터는 일생동안 동행하며 함께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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