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랴 자랴 누렁소야

2007.03.15 22:46:00



“아버지는 쟁기지고 앞서 가시고
나는 뒤따라 간다.

커다란 누렁소
너를 내가 몰고 간다.
네가 길가의 풀을 뜯으며
딸그락딸그락
자갈길을 간다.”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소를 몰고 가는 장면이 눈에 선할 것이다. 아버지는 지게 위에 쟁기를 지고 앞서 가고 어린 아들은 누렁소의 고삐를 잡고 뒤따라 간다. 이따금 누렁소는 길가의 맛있는 풀을 보면 풀을 뜯어 먹는다. 어린 아들은 힘에 부쳐 소가 이끄는 데로 따라 간다. 그러면 아버지는 돌아서서 소에게 ‘이랴 이랴!’ 한 마디 하면 소는 신통하게 풀을 뜯다 말고 다시 길을 간다.

어린 시절 그 소에 대한 추억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고스란히 피어오르게 한 책이 있어 보는 사람을 반갑게 한다. 시적인 듯 하면서도 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구수한 목소리의 김용택의 글에 비온 뒤의 맑은 수채화 같은 이혜원의 그림이 곁들인 “이랴 자랴 누렁소야!”다.

“나는 누렁소야. 내가 사는 이곳은 ‘현석이네 집’이지. 나는 작년 봄 순창 쇠장에서 이 집으로 왔어. 그때 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젖떼기였어. 현석이 아버지는 튼튼해 보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소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나를 이곳에 데려왔지.”

이 글의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소다. 그 소 이름은 누렁이. 사람이 아닌 소의 눈으로 바라보는 소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 이웃들의 모습 그리고 농촌의 정감 있는 모습들이 점점이 찍은 소묘처럼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희미한 기억의 그물 속에 묻혀 있는 것들이 엊그제 일인 듯 되살아나 추억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한다.

“내가 사는 방을 외양간이라고 불러. 사람들이 ‘서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하잖아. 그러니까 나를 잃기 전에 잘 간수하라는 뜻이야.”

이 글의 특징은 단순히 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농촌의 생활도구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도 자연스럽게 전달해주는 데 있다. 소에 대한 속담이나 외양간과 외양간의 위치, 소의 밥그릇인 여물통과 그에 필요한 여물바가지, 여물갈고리 같은 것들을 그림과 함께 따로 설명해 놓아 농촌 생활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나 도시인들에게 농경문화의 맛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꼴 따먹기 같은 아이들의 놀이도 구경할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꼴 따먹기란 소의 꼴을 벤 아이들이 심심하면 모여서 상대방의 꼴을 따먹는 게임이다. 꼴을 한줌씩 내놓고 낫을 공중에 던진 다음 낫이 땅에 떨어지면서 낫 끝이 땅에 꽂히고, 낫 자루가 땅에 꽂히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꼴을 다 가져가는 놀이다. 낫 돌리기를 잘 하는 사람은 꼴을 베지 않고도 꼴망태를 채울 수 있어 즐겨 했던 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의 변화에 따른 고달픈 농촌의 모습을 정취 있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봄이면 모내길 하기 위해 누렁인 현석이 아버지와 함께 둥그배미를 갈고 이웃들의 논을 간다. 모내기가 끝나면 조금은 쉼을 놓을 수 있는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면 보리를 간다. 그리고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사람들도 소도 한가로운 시간을 맞는다.

이러한 농촌의 모습이 누렁이의 눈을 통해 밝게 그려지고 누렁인 새끼를 배고 자신을 닮은 새끼를 낳게 된다. 그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현석이네는 누렁이를 팔아야 할 사정이 생긴다. 논을 사는데 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가 이 집을 떠나는 날이 왔어. 나를 데려갈 소 장수가 온 거야. 현석이네 식구들이 다 마당에 나왔어. 현석이 여동생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현석이는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땅을 툭툭 차고 있었지. 현석이 어머니도 자꾸 치맛자락을 올려 눈시울을 닦았어. 송아지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눈만 크기 뜨고 나를 바라보곤 했어,”

소의 마음은 그 소를 키운 사람들의 마음이다. 정성껏 돌보고 오랫동안 가족처럼 함께 했던 소를 내다 파는 마음은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다만 작가는 그 시점을 사람의 시점이 아닌 누렁이의 시점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그 애잔한 정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별의 장면에서도 쓸쓸함이나 슬픔보다는 허전한 정이 더욱 밀려옴을 볼 수 있다.

“이랴 자랴 누렁소야!”는 섬진강변의 진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직도 그 섬진강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김용택이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작가는 한 집안의 큰 재산인 소를 통해 한 해 동안의 농사일과 농촌생활의 모습과 놀이와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혜원의 민화품의 맛깔스런 그림을 곁들이면서 시골의 모습이 한층 정취 있게 다가온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을 “이랴 자랴 누렁소야!”를 펼치는 순간 독자는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의 입말처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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