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물조리개입니다

2007.03.18 21:01:00

선생님, 느긋하게 하루를 잘 쉬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두, 두 주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날이 왔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도 이 좋은 날들을 더 바쁘게 보내시고 계시는 선생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제 두 주가 더 지나갔으니 일들이 서서히 잡히고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쫓기는 듯한 느낌은 아니라 봅니다.

이 밤도 편안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책을 보시든지, TV를 보든지,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내든지, 일기를 쓰시든지, 보고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시든지, 문자를 보내든지, 밖에 나가 여가를 즐기든지, 영화를 보든지, 무엇을 하든지 머리를 푹 식힐 수 있는 일요일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어제 저녁은 울산여고에서 함께 근무한 여러 선생님들 중 몇 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즉각 반응을 보이며 전화가 오기도 하고, 문자메시지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한 선생님은 '저는 지리산 자락입니다. 가서 뵙겠습니다', '다른 한 선생님은 '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훌륭하고 멋진 교장선생님 되시길 빌겠습니다.' 경기도로 가신 한 선생님은 '감사합니다. 울산이 그리워요. 교감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한 체육선생님은 '...죄송합니다.제가 먼저 찾아뵈야 하는데...지금 대회 출전 중이라 마치고 찾아 뵙겠습니다.'... 이렇게 격려와 위로와 듣기좋은 말들로 메시지를 보내 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이게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안부를 묻고 연락을 취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시간이 적음이 아쉽기만 합니다.

아직도 날씨는 변덕이 심합니다. 낮에는 따뜻하다지만 그래도 아침에 입은 윗도리를 벗어놓으면 어깨가 썰렁할 정도 아닙니까? 낮에는 밖의 따사로운 햇볕이 아까워 그걸 담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아침, 저녁은 아직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늘 건강에 신경을 쓰시고 옷도 따뜻하게 해서 출퇴근하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는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낮에 어느 신문을 보는 가운데 ‘물조리개’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선생님은 물조리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화단이나 화분이나 밭에 심어놓은 꽃이나 난이나 모든 식물이나 농작물에 물조리개로 물을 준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물조리개를 들고 물을 주면 모든 생명을 가진 생명체들은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고 손짓하며 생기를 찾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조리개로 물을 줄 때마다 모든 생명체들은 하루가 무섭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게을리 하고 놓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만 시들시들하고 자라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자라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아주 건강하고 착하고 총명하게 잘 자라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중학교 1학년 중에는 정말 어리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일일이 쫒아다니며 가르쳐 주어야만 겨우 성장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쫓아다니며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어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게 만듭니까?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조리개 역할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물조리개에다 물을 채워 온갖 식물에게 물을 주어 자라나게 하듯이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물을 공급해야 합니다. 청소도 시범을 보여야 합니다. 심지어 책에 이름 쓰는 것까지 가르쳐줘야 합니다. 힘들 때마다 자기 자식 수십 명 키운다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고 어려움을 잘 참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운동장에는 지각한 학생들이 운동장 트랙을 열심히 돌며 정신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나가보니 손이 아직 시릴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그래도 관계되는 선생님들은 추위를 마다하고 열심히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이게 바로 물조리개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할 때 할 때 학생들은 하나하나 잘못된 습관을 고쳐나갈 것 아니겠습니까? 지각하는 못된 습관도 고치게 될 것 아닙니까? 두발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들은 단정하게 머리정리를 할 것 아닙니까? 이렇게 늘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학교생활에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이 매일매일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이 매일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이 매일매일 성숙하는 모습을 보고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물조리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간혹 사용되어지지 않는 물조리개를 본 적이 없습니까? 그건 정말 아무 쓸모없는 꼴불견입니다. 항상 물이 가득 차 물을 주는 역할을 할 때 물조리개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빛이 납니다. 보기가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구석에 버려둔 물조리개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물이 새든지 녹이 쓸든지 깨지든지 하여 몇 번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가끔 봅니다. 하지만 자주 사용되어지는 물조리개는 사용하면 할수록 항상 윤기가 납니다. 빛이 납니다. 깨끗합니다. 보기도 좋습니다. 금도 잘 가지 않습니다. 물도 잘 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용되어지는 물조리개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 모두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학생들이 사람됨도, 실력도 함께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물조리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사용되지 않고 버져지는 물조리개 말고 항상 사용되고 쓰여지는 물조리개 말입니다.

선생님은 물조리개입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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