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디오 소녀의 절망과 희망이야기

2007.04.01 16:43:00


"나는 숨을 헐떡이며 나무에 앉아 있었다. 군인들이 나를 겨누지 않은 건, 내가 여자 애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니 총알밥을 먹이는 것보다 더한 짓을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더욱 무서웠다.

군인들 중 하나라도 위쪽을 올려다보면 날 발견하고 죽일 것이다. 그러나 군인들은 내가 앞서 달려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쫓아갔다. 군인들은 소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역겨운 웃음소리가 나무 사이에 울려 퍼졌다."
 
라티노 군인들이 인디오 출신인 마누엘 선생을 죽이고, 또 도망치는 아이들을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인다. 아무 죄 없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향해 뒤에서 총을 겨누어 한 명씩 쏘아 죽이며 희열을 느끼는 동물들, 그건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생각이 다르다고, 인종이 다르다고, 또는 억지로 만들어낸 이념이 다르다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 그 죽임을 당하는 사람 중에 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반문해 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한 소녀가 있다. '나무소녀'라 불리는 가브리엘라이다.

벤 마이켈슨의 <나무소녀>는 과테말라의 내전 중에 아홉 식구 중, 동생 한 명만 남기고 온 가족을 잃은 채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이어가는 실제 나무소녀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닌 한 마야 소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극이다.

인디오 소녀인 가브리엘라는 어릴 때부터 나무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 '나무소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내전)이 시작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정부군은 인디오 마을에 찾아와 온 마을 사람들을 사살한다. 하늘에선 헬리콥터로, 지상에선 총으로. 그런데 이들을 죽이는 군인들은 미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고, 무기는 미군에게서 지원받은 것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다가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발견한다. 마을에 도착했을 땐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은 모두 죽은 뒤였다. 살아남은 자는 어린 동생 안토니오와 열다섯 살 가브리엘라를 엄마로 부르는 알리시아다. 그러나 옆구리에 총을 맞은 안토니오도 얼마 있다 숨을 거둔다.

이제 두 사람이 살아나는 길은 살던 고향을 떠나는 길 뿐이다. 고향을 떠나 멕시코로 가는 길에 아주 처참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어린아이와 여자들, 남자들을 따로따로 분리해놓곤 죽이는 장면을, 음식을 얻으러 갔다가 본 것이다. 살아남은 건 나무 위에 올라가 숨은 가브리엘라 뿐이다.

가브리엘라는 이때 혼자 비겁하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늘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건너간다. 멕시코로 건너간 그녀에게 다가오는 건 비참한 난민 수용소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면서 하루하루 생을 연장해 나간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목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줌의 구호물품이나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한다. 가브리엘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다 마을 학살 사건 때 헤어졌던 알리시아를 만난다. 알리시아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그리던 중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마리오와 함께 수용소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건 단순히 문자만을 가르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디오라는 걸 평생 수치로 여겨야 할 거예요."

가브리엘라가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자며 마리오에게 한 말이다. 조상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땅을 외부인(라티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배움마저 받지 못해 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디오. 희망 없는 수용소에서 그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수용소엔 희망의 웃음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오가 반군에 가담해 정부군과 싸우겠다며 수용소를 떠난다. 그러자 희망을 잃은 가브리엘라도 떠나고자 짐을 꾸린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꾼다. 그리곤 이렇게 다짐한다.

"언젠가는 과테말라로 돌아가, 어린 시절 그곳에 남겨 두고 온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내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같을 것이다. 언젠가 과테말라로 돌아가 마리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선생님을 찾을 거다. 그리고 학살에 대해 알릴 것이고, 우리 민족의 노래를 찾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준 노래, 한밤 내 영혼이 고요하게 가라앉을 때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 노래를."

이 소설은 과테말라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한 마야 소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한 마야 소녀의 입을 빌려 과테말라 내전 중 벌어진 마야인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자는 그 학살 현장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물과 한숨,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맛보았다. 그리곤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과 그 비참함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게 있었다. 전쟁이란 걸 내세워 인간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하지 않다고.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행위는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 중 가장 저열한 것이라고.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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