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스승, 벚꽃

2007.04.04 08:57:00


벚꽃의 계절이다. 시골 학교에 근무하다보니 눈만 들면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들이 나를 부른다. 다행히 큰 비나 센 바람이 불지 않아서 이대로라면 며칠은 더 신부의 화사한 웨딩 드레스처럼 깨끗한 벚꽃의 향연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연이 주는 이 황홀한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깨끗한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살았던 시간이 참 길었었다. 참 오랜 동안 벚꽃을 미워한 적이 있었다. 벚꽃이 우리를 아프게 했던 어느 나라의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 단순하기 그지 없는 학교 교육으로 내 머리에 각인된 탓이었다. 사춘기 시절,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을 때에도 우리 나라를 지배했던 나라의 언어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지 않을 만큼 국수주의자에 가까웠으니 벚꽃을 구경하러 다닌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니, 돌이켜 생각하니 꽃에게 참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미련스럽기도 하다. 편향된 교육이나 일방적으로 주입된 개념을 바르게 잡는 데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스스로 겪은 탓에 아이들 앞에서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참으로 조심해야 함을 느낀다. 잘못된 지식은 오히려 가르치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벚꽃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벚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아니, 동경으로 변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는 꽃이 피어난 모습을 좋아하지만 꽃으로서 생명이 다하고 지는 뒷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는 모습이 깨끗한 꽃이 있는 가 하면, 자기 모습을 빨리 감추지 못한 채 꽃이었던 시간을 움켜 쥐고 놓지 못하는 꽃들도 있다. 벚꽃을 좋아하는 첫째 이유가 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서이다. 감당 못할 만큼 한꺼번에 와르르 터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리움을 안겨 주고 홀연히 아무런 미련없이 지상의 옷을 벗어놓고 해맑은 봄날 하얀 눈꽃을 선물하며 여유롭게 하늘거리며 세상을 등지는 그 여유가 부러운 것이다.

벚꽃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인생의 절정기에서 한 순간에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충만한 비움이 부러워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어쩌랴! 말없는 자연의 스승은 한 송이 벚꽃 속에서 나를 향해 부르짖는다. 언제까지 채우고만 있을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더 생명의 뿌리를 곤하게 할 거냐고 묻는다. 벚꽃은 말이 없는데 내 귀는 벚꽃이 던지는 화두에 귀가 시끄러운 계절이다. 우리 1학년 20명의 꼬마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더 쟁쟁하게 고함을 치는 4월이다.

벚꽃의 꽃말이 '정신의 아름다움'이라던가? 누군가 정말로 잘 지은 꽃말이다. 그처럼 완벽하게, 처절하게 한 순간에 자신을 비우는, 청빈의 자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채움의 미학이 세상의 이치가 된 삶터에서 버림의 처세술을 그처럼 완전무결하게 보여주는 벚꽃을 수 십년 보내면서도 나는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살고 있으니, 봄만 되면 나는 벚꽃이 보내는 자연의 스승에게 회초리를 맞느라 마음이 멍들어 간다. 감히 '벚꽃구경'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부끄럽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해야 합니다.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듯 내 마음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간수할 건 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소중하고 아름다움 기억과 칭찬의 말 등은 간직해도 좋지만, 필요도 없는 비난이나 고통의 기억은 쓰레기나 잡동사니 치우듯이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처럼, 이 봄에는 내 마음 안에서 버리지 못한 채 끌어 안고 살아온 고통의 기억과 상처들을 벚꽃이 흩날리는 내일이나 모레 모두 버릴 수 있도록 하나씩 분리수거를 해야겠다. 고통의 바구니, 상처의 바구니, 평생 재활용할 수 없는 아픔의 바구니들을 올해만은 꼭 버리고야 말겠다. 아니, 해마다 버릴 것들을 늘려서 자연의 스승 앞에 숙제를 다 했노라고 자신 있게 나설 그날을 초를 재며 살아가고 싶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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