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안방극장에선 고구려와 관련된 역사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막 내린 <주몽>(MBC)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마지막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연개소문>(SBS), 고구려의 멸망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투쟁하는 <대조영>(KBS)까지. 그런 역사극을 보며 진정 우리는 우리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 하곤 한다.
그리고 그 역사극을 보면서 이 나라의 올곧은 역사를 생각하고 찾아내기 위하여 애썼던 곧은 선비 신채호를 떠올린다. 사실 그 역사극의 여러 부분이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 역사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제의 압제 하에서 우리의 역사는 고사되어 갔고, 해방 후에도 우리 역사는 친일파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되고 대륙의 버려진 나부랭이마냥 무시되었다. 일부 재야 사학자들이 끊임없이 우리 본래의 역사를 찾아 연구했지만 제도권의 친일 세력 역사가들에 의해 번번이 무시되었다.
그러다 근래 들어 일반 대중들도 우리 역사를 알고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역사의 관심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이 단재 선생이다. 일부에선 단재의 역사관을 지나친 민족주의적 역사관이라 하지만 단재는 단연 친일 역사가가 판치는 속에서 우뚝 솟은 우리민족의 역사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에게 신채호를 물으면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이름을 안다고 해도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우리 역사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늘 푸른 역사가 신채호>는 남다른 책이다.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이 잘 모르는 인물인 신채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늘 책읽기를 좋아했던 소년,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안은 옹골차고 총명했던 소년 신채호의 모습에서부터 성균관의 박사 자리를 떨쳐버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뛰어들었던 청년 시절의 신채호, 그리고 독립투쟁을 하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저술활동을 펼치고 무정부운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로 차디찬 중국의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순국할 때까지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다.
단재는 우리 역사 인물 가운데 김부식을 가장 미워했다. 그것은 그가 쓴 <삼국사기>가 우리 역사를 비틀어 놓았기 때문이다. 단재는 특히 발해를 예로 들며 '김부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무시하거나 헐뜯고 깎아내렸다'고 비판했다.
"김부식이 살던 고려 중엽에는 압록강 서쪽 부여 옛 땅을 거란이 차지하고 있었소. 그래서 만일 부여의 옛 강토를 가진 자를 정통으로 보게 되면, 고려 또한 비정통이 될 수밖에 없었소. 이 때문에 압록강 바깥은 우리 민족이 차지하였든 말든 다른 나라라고 보았다오. 오직 압록강 동쪽을 차지했으면 이것을 정통이라고 생각하여 당시 임금에게 아첨했다오. 그 결과 압록강 너머 발해는 아예 우리 역사에서 빠지고 말았소, 이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기억의 흔적이 아니다. 역사는 후손에게 민족의 자존심이 되고 꿈이 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비록 현실이 어둑하고 부족할지라도 광대한 민족의 역사는 미래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냇물이 되어주기도 하고, 강물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우리 역사에 무관심했고 소홀했다. 단재는 그런 의미에서 김부식을 '역사를 비틀어 놓은 원흉'이라고까지 비판한 것이다.
단재가 미워했던 인물은 김부식만이 아니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엮임 했던 이승만도 몹시 미워했다. 그래서 임시정부의 동료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단재는 이승만을 미워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차라리 나 죽이구려! 미국에 편안히 들어앉아 위임통치나 부탁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수반으로 모신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 아니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
이승만의 굴욕외교를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이승만은 외교적 수단을 이용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이에 대해 단재는 무장투쟁을 통해 자주적 민족국가를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승만은 맞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단재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이승만이 미국에 조선을 위임통치 해달라는 공식청원서를 보낸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가 곧 현실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하나를 주면 열을 그대로 주기도 하고, 하나를 뺏으면 열을 고스란히 뺏기도 한다. 매서운 바람 이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 역사를 찾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지던 단재. 가끔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도대체 역사가 무엇이기에! 조국이 무엇이기에! 독립이 무엇이기에! 나는 왜 남의 땅까지 와서 청승맞게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편안한 잠자리는커녕 따스한 밥 한 끼도 못 먹으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단재는 이렇게 한탄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단재는 그런 신념에 쓰러져 가는 몸을 다시 일으켜 두 눈을 부릅뜨고 펜을 든다. 그러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은 가운데 차디찬 겨울 시멘트 바닥에서 눈을 감는다. 푸른 정신을 쓸쓸히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