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엔 누구나 아름다운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뛰기도 하고 헤엄치기도 한다. 그렇게 뛰고 헤엄치다 보면 자신이 꿈꾸던 것을 잡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들뜨기도 한다. 허나 손에 막 쥘 것 같은 오랫동안의 꿈은 손에 잡히지 않고 저만치 서있음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 젊은 날의 꿈, 다다르고자 했으나 한 번도 이룰 수 없었던 열망을 아름다운 언어로 진솔하게 써내려간 책이 있다. 황시내의 <황금물고기>다. 황시내,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손녀이고 시인 황동규의 딸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깔끔하면서도 구체적인 언어들, 음악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들이 물에 설탕이 녹듯 잘 녹아있음을 소설가 성석제는 이렇게 말한다.
"검은 문자 속에 이토록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이, 아름다운 선율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젊은 날 가슴 속에서 떨리던 현(絃), 그 저릿저릿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꿈이 있다는 것은 열정이 있다는 의미이다. 봄의 새순처럼 돋아 있던 떡잎들이 여름날 초록의 꿈을 안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는 것은 진정 젊음이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그녀의 글에는 그 젊음의 아름다움이 외롭고도 황홀하게 펼쳐져 있다. 그 외로움은 타국에서의 외로움이고, 황홀함은 타국에서 외로움을 아름답게 바라보는데서 오는 황홀함이다.
"아무도 없었어요. 오직 괴테와 실러와 저뿐이었지요. 대체 어떠한 운명이 저를 이끌어 이 비 내리는 오후 바이마르의 한적한 납골당 안에서 괴테와 실러의 영혼과의 조우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요. 그들의 영혼은 지금 제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수백 년 묵어 지워진 묘비명처럼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간 속의 비밀을."
독일 바이마르의 한적한 공원묘지.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공원묘지 납골당에서 만난 괴테와 실러. 그녀는 그 납골당의 괴테와 실러를 바라보며 죽음이 아닌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젖어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녀는 독일에서 다양한 음악가를 만나고 화가들을 접한다. 물론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다. 그런데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베토벤이나 브람스도 있고, 고흐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은 좀 낯선 디누 리파티, 바르톡 같은 이름들도 있다. 그 이름들을 그녀는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만나고 함께 한다. 음악을 통해서 말이다.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수많은 작곡가나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끔 현장에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물론 그녀의 자유스러운 생각들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의 음악적 해석력에 음악에 문외한이 사람에게도 음악이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슈만의 <피아노 5중주>는 꼭 한 번 들어볼 만한, 숨은 진주처럼 아름다운 곡이다. 가을과 겨울에 들으면 달콤한 꽃향기 가득한 봄들판이 그려지고 봄이나 여름에 들으면 벗은 가지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비치는 늦가을의 숲이 연상되는 곡. 천재적인 음악성의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정신병적 유전자, 누구보다도 풍부한 예술적 영감에 반해 큰 규모의 작품을 끌고 나가기엔 조금 부족하다 싶은 구성력, 엄청나게 많은 곡들을 한꺼번에 작곡하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거의 한 곡도 쓰지 않은 것 등, 극과 극을 달리는 슈만의 모습이 이 곡에는 무척 아름다운 형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찾아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을 또한 느끼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녀의 글속에서 만난 것은 또 다른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외국으로 나갔던 그녀. 그 속에서 숱한 명곡을 남기고 떠난 음악가들을 만났던 그녀의 가슴엔 <황금물고기>의 꿈이 있었다.
자신도 그들처럼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 그러나 그 꿈은 다다르고자 했으나 이룰 수 없는 열망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후회나 큰 아쉬움이 남아 그녀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꿈이란 세월에 따라 변하고 생각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 보면 사람들은 가슴 속 깊은 곳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따뜻하고 순수한 인간성에서 우러나온 투명하고 맑은 터치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루마니아 태생의 피아니스트로 서른세 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디누 리파티'에 대한 그녀의 감상이다. 음악이란 만든 사람의 영혼과 연주하는 사람의 영혼의 울림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음악도 듣는 이의 마음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듣는 이의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하니까 음악이 그렇게 들려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박고 있지 않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척 매혹적인 일이 아니냐고.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디로 떠나든 떠나지 않던 우리는 언제나 이방인인지 모른다. 살아가면서 익숙한 얼굴, 익숙한 풍경보다는 낯선 얼굴, 낫선 풍경들을 더 자주 마주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처럼 아름다운 수필을 읽었다. 젊은 날의 방황을 읽었고, 젊은 날의 열정을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국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일상의 삶과 꿈을 이야기하는 낮은 목소리로 진솔하게 들려주는 마음을 만났다. 음악을 사랑한 한 영혼의 음악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