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혁명가, 그래서 행복한 혁명가

2007.04.19 22:04:00



쿠바를 떠날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내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난 아직
씨를 더 뿌려야 할 곳이 많다
그래서
나는 더욱 행복한 혁명가”라고…

-<행복한 혁명가> 모두-

체 게바라.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장관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혁명의 전사가 되어 싸우다 민중들의 별이 된 사람. 사람들은 그를 두고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장 폴 사르트르)라고 까지 칭송한다.

정말 그는 20세기의 완전한 인간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자신이 온 생애를 다 바쳤던 인간이다. 그래서 그에게 완전한 인간이라는 말보다는 ‘가장 진실한 인간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체, 그의 39년 동안의 삶이 오직 진실을 향해 나아갔고 싸웠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그가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혀 세상을 떠난 지도 40년이 되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 속엔 자신과 동지들이 끝까지 진실 되길 바랐던 간절한 마음들이 혈흔처럼 묻어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딸 일디타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 그 속엔 혁명가로서의 당부도 들어있다.

지금도
이 세상의 어느 누구인가가 당하고 있을
그 모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혁명이 왜 필요한지,
너희들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세란다

-<어린 딸에게> 모두-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볼리비아로 떠날 즈음 쓴 이 시엔 혁명가로서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혁명이 뭔지 모를 어린 딸에게 체는 한 인간으로서의 안온한 삶보다는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 아버지로서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죽음이 늪처럼 옥죄어오는 압박 속에서도 체는 딸의 열한 번째 생일날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오늘은 / 일디타의 / 11번째 생일이다// 나의 딸 일디타가 / 처음 / 이 세상에 태어난 날 / 꿈속에서 / 일디타는 가슴에 / 꽃을 한 아름 안고 / 나에게로 왔다” -<딸의 생일> 모두-

“오늘은 / 어머니의 생신이다 / 나 때문에 언제나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 가슴이 아프다 / 언제쯤이면, / 꽃처럼 환하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생신> 중에서-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그늘, 동료들은 하나 둘 적군의 총탄을 맞고 스러져간다. 동료들은 추위에 떨고 마실 물이 없어서 자신이 싼 오줌을 받아 마신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체는 어머니의 생일, 딸의 생일을 기억하며 아들로서의,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드러낸다.

체 게바라의 평전이나 그가 총탄의 빗발 속에서 틈틈이 써내려간 시편 속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엿볼 수가 없다. 오직 나가 아닌 독재와 제국주의와 자본가의 착취에 신음하고 있는 전 세계의 민중들을 향한 뜨거운 애정과 혁명가의 진실한 정신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슴과 허벅지에 총알이 뚫고 갔어도 아직 혁명의 목숨이 남아있음을 담담히 말하는 그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당부의 말을 한다. 절대 민중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지는 말라고. 그가 그의 동지들에게 하고 있는 이 말은 한 때 서민들의 대변자라 했던 작금의 위정자들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마음도 든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
차라리 가슴을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는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자리에 있는데
도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먼 저편> (미래의 착취자가 될 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모두-

혁명가요, 시인이요, 교사요, 의사요, 노동자이자 농민이었던 그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정신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불의한 것들에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으나 목숨의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혁명의 열매를 뿌리치고 외로운 길을 걷다가 그의 베레모에 붙은 별처럼 숭고한 영혼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의 시를 읽으며 체 게바라라는 한 인간의 삶을 다시 한 번 체험해본다. 때론 직선적이면서도 내면의 성찰이 있는 그의 짧은 시편들, 그 속엔 한 혁명가의 꿈과 인간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어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평생을 진솔하게 살았던 한 혁명가의 영혼을.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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