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때만 되면 학교는 돌연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빠져든다. 특히 교과 성적이 상대평가로 바뀌고부터는 내신을 망치면 대학진학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한 학생들 간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러니 시험을 출제하는 교사들이나 한 문제라도 더 맞춰야 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끝난 중간고사 때의 일이었다. 시험을 마치면 으레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어보고 정답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채점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고 자신의 점수를 확인함으로써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이 때쯤이면 간혹 교사와 학생 사이에 정답을 놓고 가벼운 실랑이가 오가기도 한다. 물론 학생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늘 따라 맞은 편에 앉은 선배 선생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평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 걱정스런 눈치를 전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단은 시험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객관식 문항 가운데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서 알아들을 만큼 설명했는데 이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내뱉었다는 것이다. 문제 하나 틀렸다고 귀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 후욕패설을 늘어놓은 제자 덕분에 선배의 마음은 날선 칼날에 베인 듯 몹시 고통스러워보였다. 선배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았다.
이처럼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고초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스승을 무시하는 제자의 언행은 이제 새삼스런 뉴스거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제자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심지어 제자에게 구타를 당하는 사례도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부모로부터 과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는 자신만 중요하고 상대방은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 자식만큼은 다른 집 자식들보다 특별해야 되고 또 모든 면에서 앞서가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과욕이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돈독했던 사제간의 정은 고사하고 봉변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학부모의 부당 행위로 인한 교권 침해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06년도에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례는 2005년에 비해 무려 71%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학생 지도 과정에서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과 학부모의 무고성 민원 제기 사례의 증가 비율이 높아 교사에 대한 경시 풍조가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이 아니더라도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은 우리 민족이 지켜온 오랜 전통이나 다름없다. 엄혹했던 시절 스승의 말 한 마디는 타들어가던 마음을 적셔주는 고마운 단비와 같았다. 성공하는 사람의 뒤에는 항상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는 말처럼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의 뒤에는 2세 교육에 헌신했던 이 땅의 스승들이 있었다.
사람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선배의 한숨 소리는 그 후로도 며칠간 계속되었다. 평생 교단에서 잔뻐가 굵은 선배의 낙담은 요즘 우리 교단이 안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점수 따는 기계가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달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쓴 소리마저 고맙게 여기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 교단에 선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