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2007.05.10 21:37:00


조선 후기 저명한 작가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 조선사회의 혼탁한 정치 현실과 양반들의 타락함을 혐오해서 과거를 보지 않고 재야학자로 지내며 젊은 선비들에게 꿈이 되었던 사람. 꽃망울이 툭툭 터지는 봄날에 그를 만났다. 그의 문학, 사상을 만났다.

내가 연암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읽었던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一夜九渡河記)'란 글에서다. 강물을 건너면서 느꼈던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 글이 당시엔 어떤 감흥이나 느낌을 주진 못했다. 다만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다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읽는 글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알야구도하기'뿐만 아니다. 이번에 새로 만난 연암의 글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엔 소설 10편, 서문·발문·기(記)·서간문·비문(碑文)·추도문·논설과 같은 산문 75편에 한시 15수 등 총 100여 편의 연암의 문학들이 들어있다. <양반전>이나 <호질> 같은 소설 몇 편을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연암의 사상과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맛볼 기회를 주었다.

연암의 글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한글로 번역되어 있어서도 그러하겠지만 연암은 스스로 살아있는 글을 참된 글이라 말하고 있다. 당·송의 글을 말하면서도 당·송의 글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썼다. 그러면서 한시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란 글에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문학을 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는 말도 하고 있다.

연암의 산문이나 소설, 시를 읽으면서 '아,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하는 것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연암의 문학성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것, 하여 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연암의 문학성을 본 게 아니라 그의 생각, 마음을 헤아려봤다.

떠나는 이 다시 오마 간곡히 다짐해도
보내는 이 눈물로 옷을 적실 텐데
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
보내는 이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연암이 맏누님을 세상에서 떠나보내며 쓴 비문(碑文) 속에 들어있는 시다. 연암은 평생 우환을 겪고 가난하게 살며, 고생만 한 누님을 떠나보내며, 여덟 살 무렵 누님이 시집갈 때 말썽을 부렸던 일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 시는 그런 연암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연암의 글 속엔 가족과 벗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고생만 하다가 떠난 형수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도 하고, 연암의 영원한 벗 홍대용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죽음에 대한 심정을 이야기한 글도 있다.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과 교류

또 연암과 자주 교류하는 벗들인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같은 인물들도 자주 나온다. 대부분 서자 출신인 이들은 연암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교류를 했다. 그러나 연암은 이들을 단순히 제자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마음과 학문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벗'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야긴 이덕무의 글 <책만 보는 바보>에서도 잘 나타난다. 연암의 글에서도 위의 벗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이 얼마나 마음을 나누고 교류했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연암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았다. 말년에 현감이나 군수 노릇을 했지만 벼슬에 큰 뜻을 두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나누며 벗으로 지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나 벗으로 두진 않았다. 그는 참된 벗을 평생 갈망하며 살았다.

그에게 참된 벗이란 권력이나 금력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자신과 마음이 맡고 학문을 논하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으면 종도, 농부도 벗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참된 벗이 있다면 천 리라도 달려가겠다고 말한다.

연암의 글 중에는 글 쓰는 것과 사람됨에 대한 글들도 많이 눈에 띈다. 연암의 말을 빌려보자.

"문장을 짓는 데에는 법도가 있소. 이는 마치 송사하는 자에게 증거가 있고, 장사치가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지요. 아무리 말의 조리가 분명하고 올바르다 하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다면 어찌 승리를 거둘 수가 있겠소. 그러므로 글 짓는 사람은 경전을 이것저것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오."

"그대는 행여 신령한 지각과 깨달음이 있다 하여, 남들에게 교만하거나 다른 생물들을 업신여기지 마시오."

인간은 자신이 남보다 조금만 우월한 게 있으면 우쭐한 마음이 든다. 글을 짓건, 벼슬을 얻건, 명예를 얻건, 아니면 자신에게 특별한 어떤 재주라도 있으면 말이다. 연암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연암의 글에 나타난 마음들을 보면 대학자이면서도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에는 270년 전에 살았던 연암의 삶과 사상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젊은 시절부터 늙은 시절까지 연암의 개성과 인간미가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연암의 글을 읽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깨우침을 준다. 고루한 사상의 편견에 사로잡힌 당시의 집권층에 대한 풍자는 현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인식을 전환하여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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