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2007년 6월 22일 금요일 가끔 비
선생의 자리에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무척 소심한 사람이랍니다. 예를 들어 교직원 회의 시간에도 내가 말해야 할 상황이 되면 가슴이 콩딱거리던 일이 멈춘 것은 지천명을 넘기고 부터입니다.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고 회람을 돌리거나 전자 우편 등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지요. 이렇게 남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데 두려움이 많았던 것은 본인의 기질 탓이기도 하지만, 학교 교육에도 영향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큰집의 사촌 오빠들이 집에 오면 인사하고 이야기 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 오빠들이 집을 나설 때까지 재래식 화장실에 숨거나 뒤란에 가서는 내내 나오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없었던 유년 시절. 그러다보니 학교 생활에서 손을 들고 발표해 본 기억이 없답니다. 중학교를 입시로 가던 시절이었으니 학교 공부는 날마다 받아쓰기, 주입식 공부가 대부분이니 발표 학습은 뒷전이었던 시절.
이런 내 경험에 비추어서 나는 내가 맡은 아이들 중에 나처럼 발표를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냥 놔두지 못하고 늘 귀찮게 합니다. 특히 국어 시간의 말하기 듣기 시간에는 전체 어린이 20명이 어떤 식으로든지 발표를 해야 자기 포인트를 얻고, 자기 모둠원 4명이 다 발표를 하면 모둠 전체 점수를 올려주는 방법을 쓰곤 합니다. 기어코 발표를 해야만 놀이 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2/3 정도는 서로 먼저 하려고 아우성이랍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의견이나 더 보탠 의견, 창의적인 발표에는 칭찬 점수를 몇 배로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는 노력도 보인답니다.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가 같은 내용을 말하면 점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은 우리 반의 꼬마인 은지는 손을 제일 먼저 드는 편인데 행여나 친구들이 자기를 늦게 지명하면 삐져서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지요.
`선생님, 나빠!`
라고 말입니다. 내가 자기를 제일 먼저 시켜 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늘 나를 독차지 하려는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그 생기발랄한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답니다. 아침 8시에 교문 앞에서 만나면 선생님을 부르며 달려와 안기는 분홍색 소녀랍니다. 그런가 하면 학교 생활 내내 온통 나만을 바라보며 해바라기 하는 보아는 이름 그대로 나만 보아 주는 귀염둥이랍니다.
오늘 국어 시간에는 자기가 심고 싶은 꽃씨를 말하고 심고 싶은 까닭까지 말하는 시간이었는데, 교과서 삽화로 제시된 분꽃을 아이들이 몰라서 나도 모르게 분꽃에 얽힌 내 어린 날의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었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큰 항아리를 가득 채우는 게 내 숙제였습니다. 동네 우물에 가서 양철통 두 개를 매단 양팔저울 같은 물지게를 지고 물울 길으며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물을 다 엎지르던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해 하는 아이들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진도가 더 나가서 분꽃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그 흔한 벽시계마저 귀할 만큼 가난했던 시절이었으니 물긷기를 끝낼 쯤이면 동네 우물가에 분꽃이 활짝 필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면 보리쌀을 물에 불려 우물가의 돌확(?정확한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에 보리쌀을 갈아서 씻은 다음 한 번 끓여 놓으면 어머니가 저녁밥을 지으시곤 했으니, 내 기억에는 분꽃은 저녁 밥 지을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였던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그랬더니 수업 시간에 우리 보아는
"선생님, 분꽃을 심을래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꽃이니까요."
뭐든지 선생님만 바라보는 보아를 보며 나는 요즘 행복에 빠져 산답니다.
그런데 우리 신원이는
"선생님, 콩이 태어나면 뭐가 되지요?"
"어? 콩이 태어나? "
신원이의 깜찍한 어휘 선택에 내가 또 감전되어 한참을 웃었지요.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시어가 되는 1학년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며 그들의 어록을 남깁니다.
아무래도 오늘의 주인공은 신원이의 명언이 당첨된 것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