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가며

2007.07.14 10:33:00

종종 버스를 탈 때가 있다. 예전엔 버스를 타는 일이 보통이었는데 요새는 좀체로 탈 기회가 없다. 승용차 십부제에 해당되는 날이나, 모처럼 모임이 있어 술자리가 예상될 때 승용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 모습이 많이 변화하였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모처럼 버스를 타고 느긋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며 가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오게 된다. 물론 내 복고적 취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가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옛날의 익숙한 내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어 그럴까. 버스에 앉아 있으면 소박한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나는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르고 내린다. 아기를 데리고 아줌마들이 타고 내린다. 학교를 파한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와 타기도 한다. 학생들은 저마다 교통카드로 버스비를 지불한다. 카드를 센서에 댈 때마다 `청소년입니다`하는 경쾌한 음향이 울려퍼진다. 그 경쾌한 음향이 또 하나 청소년들의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어줄 것도 같다.

그것은 나중에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음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른들은 저 경쾌한 음향을 들으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갖는 기대와 희망을 떠올려 보기도 하지 않겠는가. 차에 오른 청소년들은 휴대폰에 열심히 메시지를 입력하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밖의 친구와 손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옛날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어떤 남학생은 같은 버스로 통학하는 어느 여학생 때문에 몸살을 앓기도 할 것이다, 옛날 내가 그랬듯이.

젊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차에 오른다. 그 젊은 엄마가 또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아기 하나를 등에 업고 또 한 아이를 걸려 힘겹게 차에 올라 좌석도 없이 흔들리며 가는 모습에서 여성 삶의 한 단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버스는 직선 도로를 피해, 시장 모퉁이를 돌고 공단을 지나 구불구불 달려간다.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 택시를 못 타는 사람을 태우기 위해 지름길을 피해 멀리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저 만치 내가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아파트 앞을 지나기도 하고, 지금은 다 큰 쌍둥이 딸들이 다니던 유치원이 예전 모습 그대로 거기 있는 것을 보며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요새 버스는 콩나물 시루처럼 그렇게 붐비지 않는 것 같다. 그것만 해도 참 다행이다. 많은 사람이 승용차를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 이용도 많이 편리해졌다. 그중 하나가 환승요금제다. 한 시간 내엔 두 번을 타든 세 번을 타든 요금이 한 번만 계산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승용차를 타야하는 그릇된 습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쉽고 저렴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버스회사의 생존전략이긴 하지만 시민에게도 매우 좋은 조치임에 틀림 없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승용차 타는 일이 보편화되고 습관화 된 요즈음 가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시장모퉁이를 돌고 공단을 돌아 귀가해볼 일이다. 금세 우리는 얼마전까지 익숙했던 우리의 아나로그 모습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온종일 매미소리를 들으며 여름 한나절을 보내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소달구지를 몰고 뚜벅뚜벅 시골길을 걷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자동차 경적소리 엔진소리 들리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당 가득히 꽃을 심어놓고 유유자적 저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세월을 보내는 순박한 사람들 있을 것이다.

나태한 삶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거미줄처럼 얽혀 전 세계 소식을 동네일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속도에 휩쓸려 옛스럽고 멋스러운 우리의 생활 문화가 점점 더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까닭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화려한 꽃들 속에서 어릴 적 마당 가에 심어 가꾸던 봉숭아나 채송화, 맨드라미나 백일홍을 보았을 때의 반가움을 생각해보자. 너도나도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는 시대에 옛날처럼 천천히 달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고향을 한번 찾아본다면 차창으로 지나가는 산천의 모습이 얼마나 정다워 보일까.

삶의 즐거움은 세련되고 화려한 것에만 있지 않다. 생활의 멋도 최신 유행 첨단 제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오후의 햇살 속에도 기쁨은 있고, 시장 모퉁이 쭈그리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점상의 대화에서도 알콩달콩 행복이 솟아나기도 할 것이다. 첨단과 최고를 추구하면서도 전통적인 소박한 삶의 모습을 간과해선 안된다.

느리고 촌스럽고 투박한 생활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수 있지 않겠는가. 바쁘게 사는 틈틈이 저 자연속으로 나가야겠다. 가서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느릿느릿 시골길을 걸으며 사람도 다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보고 싶다. 물질적 풍요 속에 점점 빈곤해지는 우리의 내면에 저 자연의 색체와 소리가 활력을 되찾아 주지 않을까.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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